[혜윰노트]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유난히 행복하다
에어로빅 하며 신나게 놀아
활기찬 노년 여가 지원하길
“아파트를 새로 분양받거나 집을 옮길 때, 가장 먼저 어떤 조건을 살피시나요?” 강의 때마다 오신 분들에게 묻곤 한다. 학군, 교통, 주변 환경, 향후 전망 등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다 소용없다. 내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수영장이다. 집 근처에 수영장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면 다들 와르르 웃는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하긴 수영장 옆에 사느라 20년간 이사를 안 했으니, 바보 맞나?
수영만큼 번거로운 운동이 또 있을까. 수영 모자와 물안경, 수영복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아예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기껏 차려입은 옷을 다 벗고, 물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샤워부터 해야 한다. 수영을 다 하고 나와서도 또 샤워를 하고, 다시 옷을 죄다 껴입는다.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느라 정신없다. 사물함이 없다면 샤워용품과 젖은 수영복을 종일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런 귀찮은 과정을 감수해야 하기에 수영을 배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수영장에서 버스 두 정류장 정도 떨어진 집에 살 때 처음 수영을 배웠다.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이미 집을 나서기 전부터 각종 핑계가 난무했다. 추운 계절이거나 약간 늦잠이라도 잔 날은 ‘옳다구나’ 싶어 날름 강습을 빼먹었다. 하루 이틀 안 가다 보면 점점 하기 싫어지는 운동이 또 수영이다. 찬물에 몸을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운 좋게 수영장 옆으로 이사하면서 진입장벽이 확실하게 낮아졌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수영장 가까이 살 때 수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나이 들수록 수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물론 노인 중에도 꾸준히 마라톤이나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이 있다. 문제는 무릎 관절인데,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등산 혹은 달리기 하기 겁난다. 별 무리 없이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들은 많은 데 비해 아무래도 할머니들에게 자전거를 권하기는 망설여진다. 자전거가 결코 다루기 가볍지 않고, 한 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수영은 젊을 때 한 번 배워 두면 여든 살 넘어서도 즐길 수 있다. 그뿐인가, 부력을 이용하기에 새파란 젊은이들과 함께해도 그리 뒤지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에 작은 공원이 있고, 그 공원 끝이 오래된 체육센터다. 한 달에 한 번, 꼭두새벽부터 사람들이 들끓는다. 새로 등록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많은 운동 중에서도 가장 인기 좋은 종목은 수영이다. 뜨거운 계절이 다가올수록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진다. 특히 낮에 두 번 하는 아쿠아로빅 시간은 할머니들의 전유물이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수영장 물속에서 에어로빅을 한다. 가끔 평일 낮에 자유 수영을 가면 이분들과 샤워장을 같이 쓰기 마련이다.
누가 이 여성들을 노인네라 보겠는가. 주름지고 늘어지고 군살 붙은 몸이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하거나 힐끗대지 않는다. 각양각색 수영복을 입는 순간 청춘으로 변신한다. 자기 몸을 뽀득뽀득 씻고, 옆 친구들 수영복을 올려주고, 똑같은 수영모를 쓰고 나면, 계단을 내려가 놀이터로 들어선다. 큰소리로 웃어대고, 물을 철퍼덕대며 온몸을 움직인다. 각자 아쿠아봉을 하나씩 들고 물에 둥둥 떠다니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까지 된다. ‘날마다 한 시간’의 사사로운 행복이다. 수영장이 없었더라면 이 많은 할머니들은 대체 어디 가서 무슨 운동을 하며 신나게 놀까.
다른 사람들과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노인들이 혼자 운동하는 노인들에 비해 더 건강하다. 무엇보다 외로움마저 덜 느낀다. 노인 문제를 다룰 때 흔히 치매나 고독사 같은 불우한 사후 처방에만 관심을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보다는 건강하고 활기차게 노년의 여가를 보내도록 지원하는 쪽이 효용 가치가 훨씬 크다. 생활운동시설로 대중 수영장을 늘려서 많은 할머니에게 차례가 돌아가면 좋겠다.
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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