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변질을 강요받던 시기의 신문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30년대 일제하 장로교의 신문 자료를 집대성한 자료집이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원장 심한보)에서 출간됐습니다.
1985년 한국기독교 선교100주년을 기념해 '신학세계'를 간행한 이후 40년간 '신학지남'과 '활천' '대한그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 '신학월보' '기독신보' '종교시보' '기독공보' 'The Korea Mission Field' 'The Morning Calm' 'The Electric Message' '한국성경대전집' '한국찬송가전집' 등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을 위해 귀중한 자료의 발굴과 보급에 헌신하셨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일제하 장로교의 신문 자료를 집대성한 자료집이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원장 심한보)에서 출간됐습니다. ‘기독교보’ ‘기독신문’ ‘장로회보’ ‘종교시보’ 등 총 10권으로 구성됐습니다.
일제하 한국 기독교계의 유일한 초교파적인 신문은 ‘기독신보’였습니다. 1915년 12월 7일 창간돼 1937년 7월 21일자 발행을 끝으로 같은 해 12월에 폐간됩니다. 이후 바통은 기독교보와 기독신문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교파별로 기관지가 있었지만, 교파를 넘어선 신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기독교보와 이를 이은 기독신문이 없었다면, 그 이후 시기 장로교의 동향을 파악할 자료가 선교사의 영문 기록이나 각종 회의록과 회고록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을 뻔했습니다. 더욱이 기독신문은 1938년 8월 창간 때부터 장로교회의 기관지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독교 각파의 공동 기관지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전에 기독신보가 하던 임무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신문과는 별도로 장로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연맹 기관지로서 1940년 1월 24일자로 장로회보를 창간했던 것도 공동 기관지가 아닌 교단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는 신사참배 강요를 비롯한 일제의 민족말살적 황민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던 때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가혹한 시련과 변질을 강요받았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면에서든 부정적인 면에서든 기독교보와 기독신문은 당시 한국교회의 반응을 담은 생생한 기록이자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료를 발굴해 편집한 심한보 선생은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을 이끌고 계십니다. 1985년 한국기독교 선교100주년을 기념해 ‘신학세계’를 간행한 이후 40년간 ‘신학지남’과 ‘활천’ ‘대한그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 ‘신학월보’ ‘기독신보’ ‘종교시보’ ‘기독공보’ ‘The Korea Mission Field’ ‘The Morning Calm’ ‘The Electric Message’ ‘한국성경대전집’ ‘한국찬송가전집’ 등 한국교회사 연구자들을 위해 귀중한 자료의 발굴과 보급에 헌신하셨습니다. 저를 비롯해 한국교회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일흔 중반에 다른 이들 같으면 쉬실 나이인데도 이렇게 후학들을 위해서 귀중한 자료를 발굴하고 보급해 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쪼록 이 자료가 널리 보급되어 가혹한 시련의 시기를 살았던 신앙 선배들의 고뇌와 발자취가 확연히 드러나고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김승태 목사
수원 생명평화교회
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난 아무것도 아냐… 모든 건 하나님께” 환자 위해 뜨겁게 기도한 ‘대동맥 명의’ - 더미션
- 선교지에 중고 에어컨 후원… “이중직은 선교·목회의 수단” - 더미션
- 그리스도를 닮은 순교… ‘영광’의 유산으로 빛나다 - 더미션
- 목요일이면 거리 누비는 100세 전도 열정 땡볕보다 뜨거웠다 - 더미션
- “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믿음 굳게 다졌죠” - 더미션
- 팬데믹 뚫고 부흥한 교회학교, 세대통합·현장·가정예배 힘줬다 - 더미션
- [EP19]헌금하러 왔다가 헌금 받고 가지요[개척자 비긴즈] - 더미션
- 이별 후 20년, 하늘로 띄운 편지엔 ○○이 적혀 있었다 - 더미션
- 독일서 첫 AI 목사가 설교했더니… “영성·감성 빠져 무미건조 기계 같아 불쾌” - 더미션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