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택 (4) 질병·사고 잦았던 어린 시절… 날 살린 건 주님의 도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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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질병과 사고가 잦았다.
다섯 살 되던 해인 1944년 겨울 미아가 되어 혹한의 몽골 벌판에 버려진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몽골에서 태어난 나는 다섯 살 무렵, 집안 어른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지켜보다가 하얀 돌이 하도 신기하고 맛있는 사탕처럼 보여 집어삼켰는데 그것이 식도를 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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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돌 삼키고 급류에 휩쓸리는 등
한 사람이 겪기엔 너무 많았던 사건
이런 경험 통해 생명의 소중함 깨달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질병과 사고가 잦았다. 다섯 살 되던 해인 1944년 겨울 미아가 되어 혹한의 몽골 벌판에 버려진 적이 있었다. 남달리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아이가 몽골의 대자연에 이끌려 마을로부터 멀리 떠났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후 5시쯤 길을 잃고 다음 날 새벽을 맞이하기까지 무려 10시간 이상 혹한과 눈보라 속에서 대륙의 벌판을 헤매야 했다. 체력이 바닥나 굶주림과 갈증을 눈으로 달래며 그야말로 생사를 오가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눈사람이 되어 동사하기 직전, 이른 새벽 먼 길을 떠나는 장사꾼 행렬에 의해 구조됐다. 나는 지금도 그 시간을 회상하면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공포를 느낀다.
그 후에는 바둑돌을 삼켜 죽음 직전까지 간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몽골에서 태어난 나는 다섯 살 무렵, 집안 어른들이 바둑을 두는 것을 지켜보다가 하얀 돌이 하도 신기하고 맛있는 사탕처럼 보여 집어삼켰는데 그것이 식도를 막아 버렸다. 일시에 흉통과 함께 물을 포함한 어떤 음식도 삼키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상태가 됐다.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는 중국 선양에서 베이징, 베이징에서 평양, 평양에서 다시 베이징으로 큰 병원을 찾아가 마침내 나를 살렸다. 어린 시절 그 끔찍한 경험은 나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죽지 않고 산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1947년 경남 양산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한여름 장마로 급격히 불어난 강을 겁 없이 건너다 급류에 휩쓸렸다. 폭포에 떨어져 익사 직전 구조됐는데, 폭포에서 떨어지면서 암벽에 부딪혀 열이면 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환경이었는데도 희한하게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경남중 재학 때는 아버지가 사 주신 자전거를 타고 양산에서 물금으로 좁은 시골길을 가다가 그대로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져 왼쪽 팔목이 부러졌다. 그저 골절된 상태가 아니라 왼쪽 팔목 부위의 뼈가 완전히 박살 나는 대형 사고였다. 그 후유증은 일생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후일담이지만 의대를 마치고 군의관 지원 차 신체검사를 할 때, 선배 군의관이 내 왼팔을 보고 이 정도면 군 면제 대상인데 왜 굳이 군의관이 되려고 하느냐면서 나를 딱하게 생각했다. 할 수만 있으면 군에 가지 않으려 하는데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시험관에게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군의관이 부족한 거로 아는데요.” 그러니 나 한 사람이라도 더 군의관이 돼야 하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모진 가난으로 결핵을 앓았고 고교 때는 왼쪽 다리 골절 사고도 있었다. 한 사람이 겪기엔 너무 많고 가혹한 사고와 질병을 경험한 탓에 나에겐 일종의 본능, 선천적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었다. 이런 천성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다양한 아픔을 통해 후천적으로 터득한 동병상련의 정이기도 하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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