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학 자율화, 기회와 위기의 갈림길
‘대학 자율’을 기치로 개정된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지난 28일 교육부가 입법 예고했다. 교육부가 사라져야 대한민국 대학이 산다는 이야기가 예전부터 있었을 정도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대학 발전을 막는다는 비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 출범 후 대학 자율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막상 실제로 다가온 변화 앞에서 기대와 긴장의 복합감정이 존재한다. 혹자는 학령인구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를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대학에 책임 전가하는 것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임이 함께 따를지언정 대학이 존재의 의미를 확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다.
입법 예고된 개정 시행령을 보면 예상보다 더 파격적이다. 70년 이상 교육부 규정으로 되어 있던 학과제도가 사라지고 대학조직을 자율로 결정하게 됐으며, 온라인 학위 과정 개설도 교육부 승인 없이 대학 자율로 가능해졌고, 1학년부터 전과할 수 있게 되는 등 시행령 115개 조문 중 33개가 개정된 사상 최대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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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교육법 시행령 대대적 개정
학과 폐지, 전과 확대 등 파격적
단순지식 전달기능 이제 무의미
융합적 사고 갖춘 인재 길러내야
」
대학 발전을 가로막던 행정규제가 사라진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작용과 혼란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예를 들어 전공 영역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실리적인 전공 선택이 이뤄진다면 과연 모든 학문 분야가 생존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예상치 않은 파급효과가 많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혁신적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미 기존 대학 모델의 위기는 한계에 다달았다. 앞서 언급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물론이고, 평균수명이 60~70년이었던 과거에 한 분야의 전공자를 훈련하는 4년의 대학 교육이 100세 시대에도 유효할지도 재고해야 한다. 최고의 정보가 대학 도서관에 있던 과거와 달리 모든 정보를 인터넷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세계적인 교수들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누구나 들을 수 있다. 대학이 최고의 실험시설을 보유했던 과거와 달리 기업이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는 지금, 이미 IBM·구글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직원 채용 시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대체할 영역이 상상을 초월하는 마당에 대학이 단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렇다면 교육기관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있기 위해 어떤 인재를 양성해야 할까. 전공의 영역을 뛰어넘은 융합교육, 대학의 이론과 현장의 경험을 아우르는 산학 협력과 지역사회 학습, 새로운 아이디어로 담대하게 도전하는 창업 지원, 최첨단 연구 기반을 활용한 창의적 인재 양성 등 각 대학은 이미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세계가 연결되며 상호연관성이 더욱 깊어지는 시대에 적합한 품성과 관점을 가진 인재를 위한 세계시민교육도 필요하다. 심각한 인류사적 글로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 발 딛고 생활하고 있는 공동체를 살피면서 동시에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인재를 고등교육기관이 배출해야 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유네스코는 세계시민의식을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타인과 환경을 이해하고 자신을 그들과 연계할 줄 아는 능력”이라 정의했고,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4.7에 “지속가능한 발전과 세계시민의식”을 포함해 추진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은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서 핵심 글로벌 교육 의제로 선언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이뤘다. 한국 정부도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바 있었으나 아직 국내 대학에서 세계시민교육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세계시민교육의 핵심인 ‘포용성, 정의, 평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의 포용성은 주요 25개국 중 18위, OECD 사회정의 지수는 41개국 중 34위, 평화 지수는 83개국 중 48위, 특히 사회갈등은 최하위권에 들 만큼 우리의 세계시민의식 현주소는 열악하다.
대학이 배출할 인재는 현대사회의 특징인 4D, 즉 지리적으로 퍼져 있고(dispersed), 다양하며(diverse), 역동적이고(dynamic), 디지털화(digital)된 사회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 원활하게 이해하고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어야 하며, 글로벌 문제로서의 기후위기와 인권,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함께 해결하는 윤리기준을 갖춘 리더여야 한다. AI를 비롯해 발전하는 첨단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인재, 기업에 대한 투자기준으로서의 ESG를 이해하여 친환경 경영과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를 추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책임이 대학에 있다.
제도의 변화만으로 대학 문화 전체가 저절로 바뀌진 않을 것이다. 바뀌는 제도 안에 대학마다 고유한 교육철학과 인재상, 교육내용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개성 있는 색깔과 학풍의 정체성이 바로 대학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기회 혹은 위기 앞에 대학이라는 오래된 제도가 새롭게 서 있다. 피할 수 없는 격변의 시대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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