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 특권, 말로만 ‘포기’ 실효 없어 [김성탁의 시선]

김성탁 2023. 6. 3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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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불체포 특권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 대표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연속 부결시키면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기다렸다는 듯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모두 포기 서약서에 서명하자”라며 치고 나왔다. 민주당은 '김은경 혁신위'가 1호 안건으로 내건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 서명을 의총에서 논의한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연합뉴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민 다수는 불체포 특권 폐지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정치권이 불체포 특권 포기를 선언한다고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개헌하지 않는 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해당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가결을 요청하고 국회가 실천해야 효과가 난다. 말로만 '포기'를 앞세우기보다 ‘방탄’을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여야가 지키는 게 차라리 낫다.

그래서 개헌 논의조차 하지 않는 정치권이 보여주기식 주장을 하는데 휘둘릴 게 아니라 국회의원에게 특권이 주어진 의미를 돌아보고 실천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44조 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불체포 특권은 정부 수립 당시 제정된 제헌헌법 이래 계속되고 있다.

「 '의원 전원 포기서약' 여야 공방
체포동의안 부결 '방탄'이 문제
사전 심사, 기명투표 도입해야

이런 특권이 생긴 곳은 의회제도가 처음 발달한 영국이다. 국왕과 귀족 간 갈등이 심했던 1215년 존 왕이 세금을 일방적으로 거두려 하자 귀족들이 국민을 등에 업고 들고 일어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을 받아낸다. 하지만 이후에도 의회를 구성한 귀족을 상대로 전제 왕권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반복됐고, 의원을 체포해 가두는 일이 빈번했다. 권력으로부터 의회를 보호하려고 1603년 ‘의회 특권법’을 법제화한 게 불체포 특권의 시초다.

이후 미국이 연방헌법에 회기 중 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명시했고, 나치즘의 위험을 경험한 독일은 더 강력한 특권을 두고 있다. 회기 중에만 보장하는 우리와 달리 독일은 의원 임기 내내 특권을 인정한다. 체포뿐 아니라 기소할 때도 연방의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불체포특권을 법제화하지 않은 나라가 극소수일 정도로, 삼권분립이라는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필요성을 인정받는 셈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우리 정치권이 ‘방탄’에 이용하는 실태다. 국내에서 제헌국회 이후 제출된 의원 체포동의안 70건 중 가결은 17건으로 24.3%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현재까지 20건이 청구돼 16건(80%)이 가결됐고, 특권을 더 강하게 보장하는 독일조차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체포동의안 가결률이 92%에 달한다.

불체포 특권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히 운영하는 방안은 해외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 파견된 입법관이 2021년 국회사무처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2월 독일 연방의회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기독사회당 의원과 기독민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했다. 해당 기독사회당 의원은 심지어 원내대표였는데, 한 섬유업체의 방역 마스크를 정부기관이 사도록 로비한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기독민주당 의원은 해외 정부로부터 뇌물을 받고 EU 차원의 결의문 채택 등 로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이처럼 의원들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면 특권 유지의 명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체포동의안을 사전 심사하는 절차를 두는 것도 우리와 다르다. 독일은 체포동의안이 오면 국회의장이 상임위원회인 ‘선거 심사, 불체포 특권 위원회’에 넘겨 사전 심사 후 의결 권고안을 본회의에 제출토록 하고 있다. 정당 차원의 방탄을 봉쇄하고 국회 전체에 일정한 판단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체포동의안을 무기명 비밀투표로 하기 때문에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모른다. 반면 독일은 기명 투표여서 대부분 거수로 의사를 밝힌다. 유권자가 사안의 경중을 따져보고 방탄에 동조한 의원들을 심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불체포 특권을 적용할 수 없는 범죄 유형을 예외 규정 형식으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일은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신뢰도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에선 ‘중죄’는 체포할 수 있는 대상이어서 해석에 따라 대부분 주요 범죄가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속 수사 원칙이 굳건해 체포 시도가 많지 않다. 사법적 잣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특권 제도 변경을 꾀할 수 있다.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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