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로봇 1000대가 한 몸처럼 척척 “교통 체증 없어요”

고석현 2023. 6. 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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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1〉 장영재 다임리서치 대표


다임리서치 창업자 장영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다임리서치 개발센터에서 스마트팩토리의 핵심 기술인 ‘대규모 로봇 군집 자율제조’ 소프트웨어(SW)를 소개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처음 등장한 건 1961년 미국 완성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뉴저지 공장에 ‘유니메이트’를 도입하면서다. 당시엔 ‘로봇이 뭘 하겠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기우였다. 유니메이트는 무거운 장비를 옮기는 건 물론 용광로에서 나온 금속 부품을 식히거나 연마하는 등 사람이 하기 위험한 일을 척척 해냈다.

로봇은 이제 사람을 공장에서 ‘내쫓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최첨단 설비를 갖춘 삼성전자 경기도 평택캠퍼스 반도체 라인이나 LG전자 창원 스마트파크 등에는 생산 인력이 없다. 유지·보수나 관제 인력만 드문드문 돌아다닐 뿐이다. 스마트팩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로봇·인공지능(AI)·이동통신 기술 등이 조화를 이루며 공장 전체가 한 몸처럼 손발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공장의 모든 상황을 예측해 대응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필요하다.

「 대규모 로봇 자율운행 SW 개발
반도체·전지 ‘무인공장’ 움직여

AI 기술로 응급상황에도 대처
SK·LG 도입…글로벌 기업 관심

“세계서 드문 기술, 경쟁력 충분”
일본 주도 글로벌 시장에 도전

스마트팩토리서 ‘신의 손’ 역할

다임리서치를 창업한 장영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수많은 로봇을 통합 제어하는 ‘대규모 로봇 군집 자율제조’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팩토리의 ‘조물주’를 창조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이 회사 개발센터에서 만난 장 대표는 “반도체·2차전지 등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공장 수요가 많아졌는데, 산업계가 그 속도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 최근 주문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주원 기자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길이 너무 막힐 때가 있지요. ‘다른 길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내비게이션을 믿을 수 있을까’ 고민도 하잖아요.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너는 이쪽으로, 너는 이쪽으로 가’ 정리해주면 각자 원하는 목적지까지 빨리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공장도 마찬가지예요. 많게는 1000여 대의 로봇이 함께 일하는데, 이들의 경로와 목적지를 조정해 혼잡과 정체를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다임리서치는 AI 강화 학습을 통해 공장의 상황을 로봇 스스로 인지하고,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공장이 돌아가도록 하는 ‘자율제조’ 최적화 기술을 갖고 있다. 자동화 단계에선 특정 조건에서만 공장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지만, 스마트 단계에선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공장이 스스로 대응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 구축 첨병

장 대표는 “1000여 대의 로봇에 대해 실시간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학문적으로도 어렵고, 정해진 시간 내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로봇이 한 공간에 있어도 각각 상황이 다르다. 어떤 로봇은 일해야 하고 어떤 로봇은 이동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로봇은 방해하지 말고 빠져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자율적으로 판단해 로봇들이 서로 협업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팩토리가 늘어나면서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아졌다. 장 대표는 “2차전지 기업들이 국내·외에 공장을 늘리고 있는데 ‘생산량이 계획에 못 미친다’고 찾아온다”며 “자동차·반도체 등 글로벌 선두주자가 있던 산업과 달리, 2차전지는 한국이 갑자기 1등으로 떠올랐다. 공장을 디자인하고 자동화 시스템 구조를 갖추는 등 체계화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현재는 SK온·LG에너지솔루션 같은 배터리 기업과 반도체 기업 등이 다임리서치의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장 대표는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의 기술력으로 고객사를 늘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업 모델 중 하나인 ‘반도체 군집 로봇 제어 솔루션’ 논문은 지난 22일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반도체제조 저널로부터 지난해 최고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류비 절감 등 투자 효과 커

다임리서치와 협업하고 있는 포스코DX의 윤석준 로봇사업추진반장(상무)은 “강화 학습 기반으로 최적화를 잘하는 게 다임리서치 솔루션의 강점”이라며 “예컨대 무인운송로봇(AGV)이 100대 필요한 현장에서 80대만으로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어 투자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두 회사는 현재 AGV 종합관제 시스템 구축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올 하반기 제철소와 포스코그룹 계열사내 물류이송에 함께 개발한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될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전 세계 스마트팩토리 시장 규모가 지난해 862억 달러(약 114조원)이었는데, 2027년에는 1409억 달러(약 185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리서치에 투자한 최동열 스톤브릿지벤처스 파트너는 “글로벌 반도체 공장들도 현재는 사람이 정한 규칙에 따라 로봇이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트래픽이 잦아진다”며 “다임리서치는 AI 기술로 사람의 개입 없이 문제를 푼다. 세계적으로 독보적 기술이고, 반도체 톱 메이커들의 숙제를 해결할 수 있어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KAIST 교수하며 창업한 이유

장 대표가 스마트팩토리와 인연을 맺은 건 박사과정을 마친 2005년 즈음이다. 당시 반도체 공장에서 천장 레일을 통한 OHT(웨이퍼 자동운송장치)의 초기 기술 개발에 참여했고,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에서 공장 자동화 관제업무 등을 담당했다.

“자동화가 가장 잘 돼 있다는 반도체 공장도 문제가 잦았어요. 사람 수십 명이 종일 로봇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직접 가서 로봇을 옮겨야 해요. ‘이게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로봇끼리 알아서 움직이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연구의 실마리였죠.”

2010년 KAIST에 부임해선 스마트팩토리 최적화를 위한 연구 기술을 축적해 나간다. 또 산업계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산학협력 연구도 적극적으로 맡았다. 하지만 기업체에 좋은 기술을 이전해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컸다. 장 대표는 “상당수 기업이 SW를 외주화하는 게 문제였다. 차라리 직접 SW 회사를 창업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2020년 제자인 황일회·황설·홍상표·박진혁 박사와 함께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

“함께 창업을 결의한 네 제자는 연구실에서 수년간 ‘공학의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했던 동료였어요. 이들이 각각 기업체로 흩어지면 또다시 이런 시너지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산업계의 혁신을 이끌자’고 제자들을 설득했습니다.”

창업 멤버이자 현재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은 황일회 박사는 “기업에 기술 이전을 한 뒤엔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며 “그때 ‘우리 손으로 좋은 기술, 좋은 제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장 대표의 말에 공감해 창업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요리 잘하는 것과 식당 경영은 달라”

장 대표가 무작정 창업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바이오·사물인터넷(IoT) 스타트업을 세운 선배 창업자를 1년여 따라다니며 영업·마케팅부터 기업설명회(IR), 투자 유치 등을 도우면서 경영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창업할 때 기술만 들고 나가선 안 된다. 교수를 요리 연구가에 비유할 수 있는데, 요리를 잘하는 것과 식당을 차리는 건 다르다”며 “말단부터 시작해 장사를 배워야 식당을 잘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영 현장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장 대표는 “학교에서 연구하고 산학협력을 하는 것과 실제로 사업화하는 건 다르더라. 모든 걸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며 “회사 대표를 맡고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은 영업담당이다. 기술에 대해 직접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면 고객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창업 초기엔 영업이 사업의 꽃”이라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국내에서 연구개발(R&D) 창업이 활성화하기 위해선 교원 창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든 공대 교수는 창업을 해봐야 한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대학에서 교수 창업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내 기술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며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박수받는 데 그친다면 기술의 가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에디슨의 교훈 “산업을 바꿔라”

그는 이어 “하지만 국내에선 교수가 창업하면 ‘돈을 좇는다’는 오해가 따라온다”며 “공대 교수는 산업을 혁신하는 게 본연의 의무다. 현장을 뛰며 실제 산업과 접점을 찾지 않으면 공학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자연과학은 돈을 투자해 지식을 만들고, 공학은 지식으로 돈을 만든다’는 말이 있어요. 토머스 에디슨이 성공한 건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에 머물지 않고 발전·송전·배전 시스템을 만들어 전기 혁명을 이끌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백열전구를 만든 연구소는 여럿 있었지만, 산업을 바꾼 건 에디슨뿐이에요. 산업은 학문보다 더 빠르게 갑니다. 사람이 돈을 쓰는 기술이 가장 필요한 기술이거든요.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할 때도 ‘투자를 얼마나 받았나’ 같은 기술 가치를 우선 판단했으면 합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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