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AI와 후쿠시마 오염수
지난해부터 이어진 챗GPT 열풍 덕에 인공지능의 유용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 실제로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서 AI를 접해본 덕분이다.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대형언어모델(LLM) 이용 경험 덕분에 업무 자동화나 업무 보조화 도구로서의 AI의 효용성은 이미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근미래에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강(强) 인공지능(AGI)이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마저 퍼지고 있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 넘어야 할 중요한 산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AI가 구동되는 데 필요한 막대한 규모의 전력량이다.
일반의 인식으로는 인공지능이 물리적인 실재(實在)를 갖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존재이니 당연히 물리적 실재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는 탓이다. 원론적으로는 이런 인식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실제로 그런 데이터가 물리적 저장공간에 자리 잡지 않고선 연산(computation)을 진행할 수 없기에 현재 구동되는 대부분의 AI 모델은 대규모 인터넷 데이터센터(IDC)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일반적인 가구나 상업 시설보다 훨씬 많다는 게 문제다.
2022년 한 해 동안 서울특별시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소비량은 236kWh였다. 같은 해에 국내 데이터센터가 소비하는 월평균 전력소비량은 1762MWh이니, 데이터센터 하나가 서울시의 7500여 가구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런 데이터센터가 현재 전국적으로 150여 개 존재하고, 2029년까지 637개가 더 세워질 예정이다. 기존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빠졌던 4차 산업혁명 영향이 올해 수립된 제10차 계획에선 드디어 포함하게 된 이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늘어난 전력수요를 감당하려면 발전량도 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된 발전원은 원자력 발전소다.
지난해 말 신한울 1호기가 준공된 데 이어 오는 2025년까지 3기의 원전이 더 가동되기 시작하고, 올해 5월에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백지화됐던 신한울 3호기와 4호기의 주기기 제작이 착수되어 10여 년 뒤에 준공될 예정이다. 현재 국내 원전이 배출하는 삼중수소량도 논란의 후쿠시마 오염수의 10배 정도인 걸 고려하면, 미래의 원전에서 배출될 삼중수소량은 그걸 훨씬 뛰어넘을 상황인 게 자명하다. 얕은 정략적 이유로 무해한 오염수 논란을 키우는 게, 장기적으론 우리 목을 옥죄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AI뿐만이 아니다. 전기차를 비롯해 미래산업 대부분은 대용량의 전력사용을 전제하고 있다. 화석연료 발전으로 회귀하거나, 전력사용량이 줄지 않는다면 원전을 피할 길은 없다. 보다 장기적인 시야를 요구하는 건 무리일까.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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