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학 입학 '소수인종 우대'는 위헌"…대법원 판결 나왔다

김형구 2023. 6.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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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의 부임 후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관(대법원장), 사무엘 알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윗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1960년대부터 미국 대학 입학에서 흑인ㆍ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우대해온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미 연방 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입 정책은 물론 앞으로 취업 등 미국 경제ㆍ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6월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이후 미국 사회에 일었던 격랑과 분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 연방 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ㆍ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UNC)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3, 6대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노스캐롤라이나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대학이며, 하버드대는 가장 오래된 사립대학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인으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이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불굴의 도전, 축적된 기술,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 왔다”며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진보적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평등한 교육 기회는 미국에서 인종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이번 판결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선례와 중대한 진전을 후퇴시킨 것”이라고 했다.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과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도 반대 의견에 동참했다. 다만 잭슨 대법관은 하버드 대학 이사 근무 경력 때문에 하버드대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 사건은 판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방문객들이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 대법관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대입 소수인종 배려 정책은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해진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도입됐다. ‘정부 기관들은 지원자의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affirmative)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어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년 ‘연방정부가 직원 고용 시 인종과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에 차별받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강화된 내용을 담아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같은 행정명령 조치로 주요 대학에서 흑인 입학 비율이 올라가는 등 미국 사회 내 다양성 고양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백인과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인종에 따른 가산점 제도가 오히려 역차별적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구 비율 대비 입학생이 적은 소수 인종에게 ‘플러스’를 주는 제도가 다른 학생에게는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미국 내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한 상태다.

미국의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ㆍSFA)’ 소속 회원들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앞에서 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앞서 SFA는 대학 신입생을 뽑을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적용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면서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2014년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1ㆍ2심에서는 SFA 패소 판결이 나왔다. 1ㆍ2심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거나 수학 공식에 따라 인종 분포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 판례를 들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었다.

미국 대학 입학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해온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10월 31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 앞에서 제도 존속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세계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나라인 만큼 이날 연방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국제적 파장도 예상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의 영향과 관련해서는 여론이 다소 엇갈린다.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계의 경우 응답자의 50%가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대입 시 인종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72%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아시아계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답변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학업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들이 소수인종 우대 정책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내에선 이날 연방 대법원 판결이 인종 간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판결 이후 미국 내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처럼 2024년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도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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