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파 유권자가 정치를 바꾼다 [쿠키칼럼]
대결 극복하려는 문제해결 의원모임 등장
달라진 유권자들의 선택이 정치 발전 원동력
내가 일하고 있는 미주한인유권자연대 (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의 워싱턴DC 사무실을 옮겼다. 이전 확장을 축하하는 행사가 21일 저녁에 열렸다. 사무실을 찾은 연방의원들 중 공화당과 민주당의 두 의원이 한자리에 서 있는 사진이 찍혔다. 현재의 미국 정치 환경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영 김(Young Kim) 공화당 의원은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이다. 그 옆에 선 민주당 조쉬 갓하이머(Josh Gottheimer) 의원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연설문 작성비서관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두 의원은 축하 연설을 앞 뒤로 마치고도 한동안 머물면서 서로에게 친밀감을 보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민주-공화 양당이 서로 싸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같이 일하고 협력하는 일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다시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인들
두 의원은 하원의회의 ‘문제해결 코커스(Problem Solvers Caucus)’ 회원이다. (코커스란 미국 연방의회의 의원 모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교성 코커스부터 사회 현안은 물론이고 특정 국가와의 관계 발전을 목적으로 한 코커스까지 다양하다.) 문제해결 코커스에서 미국 정치의 희망을 본다. 2017년 시작된 이 모임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두고 중요 현안에서는 타협점을 찾고 협력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초당적 코커스다. 2023년 현재 민주 32명 공화 32명, 모두 64명의 의원이 회원이다. 갓하이머 의원은 민주당의 공동의장으로, 영김 의원은 공화당 소속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질 수 있었던 부채한도 협상(Debt Ceiling Deal)이 이 달 초 타결됐을 때도 문제해결 코커스가 큰 역할을 했다. 반도체 법과 인프라 법 같은 경제 현안 입법에 앞장서기도 했다.
분노.. 불만.. 대립하는 미국 정치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전에 없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오바마 정권 때 격화된 대립은 2016년 대선 때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극우 진영과 버니 샌더스를 필두로 한 극좌파 진영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지경까지 치달았다. 부동산 사업가였던 트럼프 후보가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권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근간으로 극단적인 선동이 양당에서 힘을 얻었다.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온건파와 급진파들이 대립하며 서로를 비난한 장면은 지금 한국 정치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 시기에 문제해결 코커스가 만들어졌다. 당의 주장 안에만 머물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협하는 길을 찾기 원하는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코커스를 만들었다.
중도파 유권자들이 나서고 있다
트럼프의 4년 임기에 이어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중도적인 성향의 조 바이든이 승리했다. 지난 해 중간선거에서도 전국적으로 중도 성향의 후보들이 부동층의 표를 모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싹을 키워가고 있다. 물론 극명하게 갈라진 다수 유권자들이 중간 지대에 모이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이지만, 문제해결 코커스 같은 의원들의 활동을 보면 아직은 미국 정치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도 올해 초 재적의원의 40%가 넘는 130여 명으로 이루어진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읽었다. 규모로 볼땐 미국의 문제해결 코커스보다 훨씬 크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이 목표로 하는 선거구 개편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소식이 없어 잘 모르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인들 탓만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탄생한다. 유권자들부터 대화와 타협을 원하는 선택을 한다면 정치인들도 민심을 따라가지 않을까. 신념을 포기하자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이들이기에 존중하고 대화하며, 결국엔 어느 지점에서 타협하는게 당연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도 정부도 국가도 후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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