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은 모두의 번영을 약속하는가

김남중 2023. 6. 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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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736쪽, 3만2000원
1880년대 영국에서 제작된 기차 ‘아르키메데스’ 호(위)와 2022년 포르쉐 공장의 로봇들. 기차라는 기술이 더 많은 고용과 더 좋은 일자리로 이어졌다면 현재의 로봇 기술은 자동화를 우선순위에 놓고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생각의힘 제공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고, 기술에 일부 문제가 있더라도 유익이 훨씬 더 크다고 여겨진다. 이런 생각은 기술 발전이 생산성 증대를 가져왔으며 그 결과 인류의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역사관, 어떤 문제가 닥쳐도 기술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전망으로 뒷받침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테크노-낙관주의’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이자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는 대런 아세모글루는 MIT 동료 교수인 사이먼 존슨과 공동 저술한 ‘권력과 진보’에서 ‘기술 발전=진보’라는 통념에 도전한다.


“지난 10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와 현대의 실증근거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더없이 명백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책은 인류사가 기술혁명으로 평가하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디지털혁명 등을 조명하면서 기술과 번영의 관계를 재확인한다. 저자들은 여기서 ‘번영’과 ‘공유된 번영’을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 증가를 뜻하는 번영을 가져온 것은 맞지만 그 번영이 자연스럽게 다수에게 공유되는 건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곡물 생산을 기반으로 한 고대 문명 모두에서 대다수의 인구는 수렵 채집을 하던 조상보다 못 살았고, 반면 지배층은 훨씬 더 잘 살았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번영은 한 세기 동안 공유되지 않았다가 19세기 후반에야 달라지게 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몇십 년에 걸쳐 노동자들에게도 널리 공유되는 번영의 시기가 펼쳐졌는데, 역사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이 시기를 이끈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였다.

자세히 뜯어보면 기술이 곧바로 공동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의 성과와 경로는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편향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왔다는 장기적인 추세를 부정하긴 어렵다. 저자들은 기술과 번영 사이에는 투쟁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우리가 (기술) 진보의 수혜를 입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주요 이유는 우리 앞의 세대들이 그 진보가 폭넓은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디지털 경제야말로 기술과 번영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저자들에 따르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공유된 번영의 무덤이 되었다.” 국민소득 중 노동으로 돌아가는 몫은 급감했고, 임금 불평등은 크게 증가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노동자의 업무를 자동화했고, 자본에 비해 노동에 불리하게, 그리고 대졸이나 대학원졸 노동자에 비해 저학력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동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빠르게 진행됐는데 당시에는 노동 수요를 높이는 또 다른 변화들이 자동화가 일으킨 노동 대체 효과를 상쇄했다. 회사가 새로운 기계를 도입할 때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업무와 교육을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자동화를 우선순위에 놓고 노동자들이 수행할 새로운 업무의 창출은 등한시한다면 공유된 번영을 파괴하게 된다.

기술은 양면적이다. 공유된 번영을 가져올 수도 있고 심화된 불평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저자들은 기술이 생산성을 높여주면 그 이득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임금도 증가한다는 ‘생산성 밴드왜건’ 개념을 비판한다. “‘생산성 밴드왜건’이 나타나느냐 아니냐는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업무와 기회가 창출되는지와 생산성 향상의 이득이 노동자들에게도 공유되게 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기술의 방향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또 글로벌 테크 지배층이 설정하는 기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대항적 권력, 대안적 내러티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후반부에서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을 강하게 비판한다. “‘기계 지능’에 대한 열광은 대규모 데이터 수집, 노동자와 시민의 역량 약화, 그리고 노동자 대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동화로의 질주를 촉진한다.” 또 “인공지능과 ‘기계 지능’에 대한 현재의 강조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발달해 갈 수 있는 수많은 경로 중 매우 특정한 한 가지 경로일 뿐”이며 “이 경로는 소수에게만 막대한 이득을 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뒤로 밀려나게 하는 쪽으로 근본적인 분배 효과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테크놀로지의 방향은 사회의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다면서 인간의 목적에 비추어 얼마나 유용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계 지능’보다 중요한 것은 기계가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할 것인지, 즉 ‘기계 유용성’이다. 기계 유용성에 집중하면 사회적으로 더 유용한, 특히 노동자와 시민에게 더 유익한 경로를 찾아가는데 지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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