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바꿔 중국인 ‘건보먹튀’ 제한 검토…與의 ‘시행령 정치’
국민의힘이 중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방지를 위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보다 빠른 길을 찾겠다는 의도지만 자칫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2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조건을 ‘6개월 이상 거주’로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내용을 검토 중”이라며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조만간 당정협의회를 열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중국인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비판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중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에 비해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 범위가 훨씬 넓어 그동안 ‘상호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국내 거주 외국인은 ▶직장가입자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역가입자 등 세 분류로 나뉜다. 특히 피부양자는 직장가입자의 가족이면서 연소득 2000만원 이하의 요건만 충족하면 거주 기간과 상관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외국인, 그 중에서도 중국인 근로자의 부모와 장인·장모까지 아프면 한국으로 와서 저렴하게 치료를 받고 출국하는 ‘건강보험 먹튀’ 논란이 이어졌다.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건강보험 재정 적자액은 229억원에 달했다. 2018년(1509억원)과 2019년(987억원)에 비하면 상당히 줄었지만 코로나19에 따라 출입국이 제한됐던 2020년(239억)원과 2021년(109억원)에 비해선 다시 늘어난 것이다. 외국인 가입자 수 상위 10개 국가 가운데 적자를 기록하는 국가 또한 중국이 유일하다.
이런 불균형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하지만 국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2021년 주호영·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외국인 건강보험 피부양자의 거주요건을 강화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일 뿐이다.
중국 관련 문제에 강경한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이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은 일단 야당의 도움 없이도 바꿀 수 있는 시행령(대통령령)이나 시행규칙(부령)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61조의3 ‘외국인 등의 피부양자 자격취득 신고’ 조항은 외국인의 국내 체류조건은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 조항에 ‘6개월 이상의 기간’이나 ‘지역가입자에 준하는 기간’을 추가하거나 시행령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2018년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최소 체류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사례를 주시하고 있다. 당시에도 법률 개정이 아닌 보건복지부의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체류기간이 연장됐기 때문이다. 외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거주요건을 지역가입자와 동일하게 맞춰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문제는 최근 여권이 여야가 대립하는 논쟁적인 사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시행령 개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방안이 대표적이다. 분리징수를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부터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은 절차적 문제를 들며 시행령 개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지만, 방통위는 지난 16일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총선 전 수신료 분리징수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김기현 대표의 핵심 공약인 예비군 학습권 보장안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진행 중이다. 지난 28일 당정은 예비군 참여 학생의 출결과 성적처리 등에 불이익이 있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7월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넘었지만 169석의 민주당이 길목을 막고 있는 형국”이라며 “정부와 여당이 정책 주도권을 갖기 위해 행정입법권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국회 패싱’이 계속되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등 행정입법권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논란은 정권마다 존재했다”며 “시행령 개정 권한도 중요하지만, 원칙적으론 상위 법령 ’개정을 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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