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미술 압권, 한국 성악진 훌륭, 근데 왜 찌르는데?

박순영 2023. 6. 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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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폐막작

[박순영 기자]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의 한 장면.
ⓒ 박순영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단장 최상호)의 <일 트로바토레>가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폐막작품으로 공연되었다. 마지막 3막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전설의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이자 거장 연출가 잔 카를로 모나코가 연출과 무대, 의상을 다한 <일 트로바토레> 3막 감옥장면은 가로세로 3칸씩의 쇠창살 무대 그 자체만으로도 이번 오페라를 본 사람이라면 관람의 가치를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만약 이 장면이 보통처럼 동굴감옥이거나 요즘 현대오페라처럼 쇠창살 문양의 사람 몸 한 오브제였으면 극의 느낌과 흐름은 아예 달라졌을 것이다. 그 9칸짜리 감옥, 주역가수들의 얼굴표정까지 안 보일 정도로 처참함을 극대화한 감옥 장면에다가 마지막에는 "그는 네 동생이다"라고 아주체나(메조소프라노 김지희)가 말하자 자신의 사랑 레오노라(소프라노 서선영)도 죽고, 연적이었던 만리코(테너 국윤종)가 동생이었다는 사실에 싸이코 기질이 터져 나온 만리코 백작(바리톤 이동환)은 아주체나를 칼로 수차례 찌르며 공연은 끝이 난다.

기분이 얼얼하다. 꼭 마지막에 그렇게 찔러야만 했는지? 커튼콜 때 델 모나코 감독은 이태리 제작진과 한국 성악진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무대를 떠날 줄을 몰랐다. 여러번 앞으로 나와 인사했으며 감흥을 전했다. 그만큼 정도 많고 열정도 많은 사람으로 보였다.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의 한 장면.
ⓒ 박순영
공연의 1, 2막은 사실 무대 스케일은 컸어도 무대 전환 때문에 혹시 무대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고, 중세시대 이야기를 현대 할렘가로 바꾼 설정이 특별해보이지 않을 만큼 주역 성악진들의 노래 모습이 주가 되어 이끌어가고 있었다. 현대식 의상은 오히려 잘 어울렸다. 주인공 루나백작(이동환, 강주원)은 가죽재킷을 입고, 만리코(국윤종, 이범주)는 청바지에 체인벨트를 차고, 이들이 동시에 사랑하는 레오노라(서선영, 에카테리나 산니코바)는 긴 가죽장화를 신었는데 노래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기자가 공연을 본 프레스콜 21일과 본 공연 22일에서 소프라노 서선영의 '고요한 밤은 평온하고'는 2층 집 무대와 어울리며 더없이 평안하고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2막 끝의 수녀원 장면의 삼중창 높은 D음은 시원했다. 루나백작 역 바리톤 이동환은 2막 2장 '그대의 미소는 아름답고'에서 점잖게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느긋함을 저음충실하게 잘 표현했다. 

제목의 주인공 음유시인인 만리코 역 테너 국윤종의 팽팽한 음색은 극을 경쾌하게 해주었다. 3막 2장 아리아 '아! 사랑스러운 그대여'는 팽팽한 속도감솨 높은 C음에서 만리코의 기백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며, 레오노라와의 듀엣에서도 더없이 음유시인 그대로였다. 아주체나 역 메조소프라노 김지선 또한 2막 '불꽃은 타오르게 하고'에서 비운과 음산함을 가득 담은 음성과 연기로 자신의 어머니가 마녀로 화형당했고, 자신이 아들을 불에 던졌다는 내용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의 한 장면.
ⓒ 박순영
 
매 막 변하는 무대미술의 경우 의미는 있었다. 1막의 거대 석상은 일부는 팔이 떨어지고, 칼이 떨어지기도 하는 디테일까지 표현했으며, 1막 3장과 4막에서 레오노라와 만리코가 노래하는 2층집은 따스했으며, 2막의 할렘가도 상상력을 자극하며 또한 유명한 '대장간의 합창'을 만리코와 루나백작이 이끄는 두 갱집단 사이의 권투싸움으로 표현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극단의 집요함과 거대함만이 오페라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오페라가 노래하는 예술이라면, 주역들의 노래에 집중이 되어야 한다. 만리코의 멋들어진 아리아 '아! 사랑스러운 그대여!'가 노래되는데 왜 갱들의 깃발이 펄럭여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는지, 오케스트라 템포는 조금 여유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또한 1, 2막 갱들의 양자구도가 정확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래와 이야기는 읽히는데 느껴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국립오페라단 <일 트로바토레>의 한 장면.
ⓒ 박순영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탄생 21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멕베스>(4.27-30), 이번 <일 트로바토레>(6.22-25), <라트라비아타>(9.21-24), <나부코>(11.30-12.3)까지 네 편의 베르디 작품을 올린다는 야심찬 올해 프로그램이다. 4월에도 해외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의 무대였다. 두 달사이 모두 해외연출가다. 물론, 이번처럼 거장 해외연출과의 공연은 세계급 한국 성악진과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에도 서로의 문화를 전수할 좋은 기회가 된다. 이번 공연의 경우도 고전의 현대적 해석과 압도적인 무대미술, 훌륭한 음악으로 어느 때보다도 더욱 좋은 무대가 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어마어마한 돈이 해외로 나간 것이고, 우리작품을 알뜰히 만들어 해외무대에 올려야 할 국립이 자주 이런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우리 작품을 만들어 해외에서 초청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좋은 무대를 보고도 왠지 모를 아쉬움에 쓴소리를 한 마디 담고자 한다. 한국 사람의 정서와 한국교육 시스템만으로도 지난 4일 22세의 한국 테너 김태한이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우승한 바, 한국인의 실력이 이미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찬찬히 듣고 그것을 찬찬히 듣게 해줄 우리 연출가가 해야 한다. 잔잔한 내공을 가진 그가, 무조건 내지르고 빠르게 달리고 펼쳐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암시하고 상상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에게 고전이 된 오페라라는 장르만의 미학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 노래를, 노래를 통한 인생의 비장미를 느끼고 해줄 소중한 한국 예술가들만의 국립오페라단 시즌 정기 공연으로 계속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뜻이다. 해외 팀과는 종종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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