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중심 학폭위, 가해자 반성도 피해자 회복도 없었다"

슬로우뉴스 2023. 6. 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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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느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자 정승훈 "여론 떠밀려 만든 법안, 문제 본질을 보자"

[슬로우뉴스 기자]

정승훈씨는 가해학생의 엄마였다. 정승훈씨와 그 아들이 겪었던 일은 학교폭력 사건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몇 가지 힌트를 준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아침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전화가 와서 '후배를 때렸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잡혔고 서면 사과(1호)와 특별 교육(5호) 조치가 내려졌다. 그걸로 끝난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건은 피해학생의 부모가 신고를 해서 경찰로 넘어갔다. 경찰 조사에 이어 검찰에서 형사조정위원회가 열렸고 피해학생의 어머니를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정승훈
ⓒ 길벗: 2020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고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답변까지 들었지만 두 번째 조정위 회의에서 피해학생의 어머니가 합의금으로 4000만 원을 요구했다. 정신상담 치료와 당장 해야 할 코 수술과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턱이 돌아가면 양악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 정도 금액을 받아야겠다는 주장이었다.

합의금을 치르면 끝낼 수 있었지만 돈으로 합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학생 쪽에서도 금액을 두고 흥정할 생각은 없었다. 가격을 깎으려 드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고 느끼게 되거나 합의금을 안 받아도 좋으니 빨간줄을 긋게 만들겠다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흐르는 경우도 흔하다. 2인 이상이 가해한 특수폭행에 해당했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이 되지 않았다.

결국, 조정은 결렬됐고 사건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정씨의 아들은 소년 재판을 받고 1호 감호위탁 6개월과 3호 사회봉사 40시간의 처분을 받았다.

정씨는 이때의 경험을 정리해서 <어느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이 책에는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꼭 지켜야 할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또 다른 가해가 된다. 정확하게 경위를 확인하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기다림이 서운함이 되고 서운함이 분노로 바뀌기 전에 잘못을 인정하고 신뢰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둘째, 피해학생을 탓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비치면 문제가 더 커진다.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공감과 사과가 있어야 피해자가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셋째,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포자기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정승훈씨는 "무엇보다 부모가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면서 "아이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일이 커지기 전에 아이가 도움을 청해오고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모가 감정을 앞세우면 일을 더 어렵고 크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1. 아이 말만 듣고… 아무런 정보 없이 참석하는 학폭위

- 아드님은 가해학생으로 5호 조치를 받았잖아요. 비교적 약한 조치를 받았고, 아드님도 정말 바르게 잘 자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가해학생 어머니로서 학교폭력에 대한 시선이 좀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가장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그전에는 학교폭력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되게 막연하고 저럴 수 있겠지 생각했죠. 방송이나 신문이나 아니면 드라마에 나오는 극단적인 사례를 보고 듣다가 직접 경험을 하고 나니 그런 거잖아요. '저거는 현실과 너무 다르다.' 직접 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저런 상황은 너무 많이 부풀렸고, 저런 거는 이런 경우에 맞지 않고, 알 수가 있는 거죠."

- 학폭 상담을 하시면서 이런 규정은 너무 이상하다, 그런 게 있었을까요.

"학폭위 조치가 1호부터 9호까지 있죠. 선생님들조차도 난감해 하는 게 교내봉사(3호)에요. 청소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죠. 껌딱지 떼고, 청소하고 이게 전부예요.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죠. 그래야 피해학생도 회복하죠. 사회봉사(4호)도 마찬가지예요. 두 가지 모두 자기 행동을 돌아보고 책임질 수 있는 조치가 아니라 그냥 이거 했다고 때우는 조치거든요."

- 아드님 경우에는 어땠습니까.

"저희 아이도 사회봉사로 쇼핑백 접기 같은 거 했었거든요. 성인 범법자인 사람하고 하루종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쇼핑백 접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뭘 하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프로그램이 부실하군요.

"학폭위 조치에만 중점을 둬서 그런지 수강명령이 나오면 그제서야 하는 거지, 평소에는 그런 교육이 돼 있지 않으니까요. 참여도 잘 안 하고요. 조치로서 내려져야 교육을 받잖아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안 받는 부모가 있고, 벌금을 물더라도 안 받겠다라고 하는 분도 있고요.

저는 교육을 다 참여했지만, 참여를 안 하시는 분도 계시고, 못하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제가 위센터에서도 교육을 받아보고 법무부 쪽에서 내려온 교육도 받아봤는데 그 교육이 별로 그렇게 도움이 되는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도 시간을 채우는 게 목적이지 이걸 통해서 내가 바뀌거나 아니면 뭔가 나아지는 걸 기대하고 오지 않아요."
 
  SBS 스페셜: 학교의 눈물
ⓒ SBS, 2011
 
- 생각하고 계신 효과적인 선도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학교의 눈물'(SBS, 2013)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피해자, 가해자 학생들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게 하며 상담도 받고 교육도 받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사건의 해당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니에요. 다른 사건의 당사자들이죠. 같이 생활하면서 내가 한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작용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간접 경험을 하면서 반성을 해요.

직접 해당 사건의 가·피해자를 만나게 하는 건 피해자에겐 2차 폭력이기에 해서는 안 되는 경우거든요.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안 된다면 역할극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단순히 대본을 외워서 하는 역할극이 아니라 심리치료 차원으로 접근해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면 효과가 있겠죠. 이런 프로그램은 당사자가 아니어도 가능한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직접 느껴봐야 알 수 있어요.

역할극이 아니라면 깜짝 카메라 같은 설정극도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설정극임을 알려주고 어땠는지 느낌을 이야기하면 되겠죠. 지금처럼 형식적인 프로그램은 참여하는 학생들도 흥미도 없어서 도움이 되질 않아요.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경쟁이 심한 학교에선 진도 나가고 시험 치르기 바쁘니 이런 프로그램을 할 엄두도 낼 수 없죠. 결국 단순한 프로그램, 예방법,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학교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 학교의 역할에 대해 아쉬웠던 점이 있었을까요.

"사실 보호자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느낌이 들죠. 그때는 교육지원청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자치위원회로 열렸을 때라 언제 학교에 오시라, 이렇게 서면으로 연락이 오면 그냥 그날 가는 건가 보다, 그게 다예요. 그리고 가는 거죠. 그 전까지는 사안에 관해 우리 아이를 통해서만 듣는 거고요. 거기에 가서야 몰랐던 걸 많은 걸 알게 되죠. 미리 학교에서 알려주는 게 많지 않았어요."

- 학교에서 '앞으로 이런 절차가 있을 겁니다, 이런이런 걸 준비하면 됩니다', 이런 가이드나 설명이 전혀 없었다는 거죠.

"없어요. 그냥 우편으로 '언제 이런 게 열립니다' 통지를 받는 거죠. 절차상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르죠. 그래서 제가 답답해서 책이며 인터넷이며 막 찾아봤던 이유도 학폭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니까요.

자치위원회가 열리고 난 다음에도 어떤 조치가 나올지 몰라요. 학폭위가 끝나고 거기서 회의를 통해서 어떤 조치를 내리겠다는 걸 그냥 통보받는 거죠. 또 통보 받고 내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면 재심이나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오는 거죠. 그게 끝이에요."

- 당황스럽고 걱정도 될 텐데 도움 받을 곳이 없었군요.

"담임 선생님은 관여할 수가 없어요. 제가 담임 선생님한테 여쭤봤더니 본인이 참석할 수도 없고, 관여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교사의 방관을 유도하는 제도.
ⓒ 게티이미지
 
- 현재는 담임교사는 전담기구의 사안 조사 단계에서 진술을 하게 돼 있는데 이런 조사조차도 협조하지 않는 교사들이 꽤 있다고 하더라고요.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요.

"예,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사안을 제일 잘 아는 담임선생님은 학폭위에 참석을 못하고, 학교 전담기구에는 담임교사가 없어요. 교감, 상담교사, 책임교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되죠. 책임 교사가 사안을 담당하는데, 학폭 책임교사가 누군지도 학부모들은 몰라요. 왜냐하면 그걸 공지해 주거나 누구라고 얘기해 주지 않으니까요."

- 책임 교사가 누군지도 몰라요?

"그러니 학부모들은 진짜 깜깜이죠. 어디서 내가 정보를 구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이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겠고, 그때 당시에는 도란도란 사이트의 가이드에 관한 안내조차도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도란도란 사이트에 들어가면 학교폭력 가이드 매뉴얼 있으니까 그걸 다운받아서 꼭 보시라고 보호자들께 얘기하죠. 하지만 그땐 그런 안내조차 없었어요. 그러니까 학폭위 날짜만 공지해 주고, 안내지 그 이상은 없었어요.

물론 책임교사가 누군지를 알게 되면 그 책임교사에게 업무가 되게 많이 몰리기는 하겠죠. 그런데 저는 학폭위 열리기 전에 부모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자녀 이야기만 들으면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 얘기하지는 않을 수 있어요. 그러면 사안에 관해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학폭위에 참석하게 되죠. 아이의 말만 듣고."

- 이를테면 피해학생의 보호자를 따로 만나지 말라든가 하는 안내 사항도 없나요?

"개인정보 문제라 어차피 연락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그리고 피해자 가해자가 같이 모여서 학폭위 심의를 받는 줄 알았는데 같이 받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때 가서야 알았어요. 저희도 부모님들이 상담올 때 피해자, 가해자 보호자가 같이 만나서 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물어본 사람도 많아요."

- 같은 날 다른 시간에 하는 거죠? 같은 날 하는데 이를테면 10시에 하고 11시에 하고 이런 식인가요?

"재판처럼 진행되는 과정이 아니거든요. 같이 부딪히지 않아요. 저희가 들어가면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그제서야 이런 얘기를 하고 그 경위에 대한 거를 쭉 읽어주시는 거예요. 그때서야 사안에 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듣는데 아이에게 들었던 것과 안 맞는 얘기도 있겠죠. 그래서 사실과 다르다고 했더니 피해학생 학교 선생님이 화를 내시면서 어머님이 변호사시냐 이러는 거예요."

- 책에서 보니 약간 취조받는 분위기 같던데요.

"학부모가 참석하면 피해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가해 부모님도 마찬가지고, 자녀들이 말하는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들어가서 그 사실을 거기 가서 확인하는 거죠. 이건 굉장히 불친절한 방법이고, 사전 정보 공유가 너무 부족해요.

물론 학폭위가 다 끝나고 나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회의록이나 이런 거를 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거는 사후잖아요.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됐든 그런 일에 관해 사실과 근거, 구체적인 정황을 담아서 '이런 거구나, 내 아이가 이렇게 했구나, 내 아이 얘기한 거랑 좀 다르네', 이런 부분도 인지하고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 말만 듣고 아무런 정보 없이 참석하는 학폭위?
ⓒ CC0
 
- 보호자들끼리 서로 대화를 하면서 사실 관계를 좀 맞춰보면서 생각을 좁힐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보호자를 미리 학폭위 전에 만나게 하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니예요. 왜냐하면 이게 서로 지금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잖아요. 누구의 중재도 없이 그냥 만난다, 이거 자칫 이상하게 번질 수가 있어서 학교에서는 절대 추천하지 않습니다."

- 저희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인터뷰했는데요. 학부모 화해중재관 제도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가 개입하기 어려우니 학부모들이 중재를 돕게 하겠다는 건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학교폭력이라는 게 가해 보호자든 피해 보호자든 감정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안이에요. 그래서 제대로 그 갈등을 중재하려면, 중재관의 개인 역량이 엄청 중요한 부분이죠.

학부모가 중재관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참 좋은데, 학부모도 개인적인 역량의 차이가 많죠. 진짜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는 분들 중에서 자가당착에 빠져서 오만하신 분도 있어요. 차라리 모르시는 분들이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하고 알려드리면 열정을 가지고 하는 잘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오히려 오만한 분들은 더 망칠 수 있어요."

2. 보호 받지 못한 아이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진상 보호자가 힘이 센 것 같아요.
ⓒ CC0
 
- 여러 해 동안 상담 하시면서 그래도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쪽으로 흘러가는구나 이렇게 느끼세요, 아니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아직 정의가 살아있구나, 공정하게 잘 처리가 되고 있구나, 이렇게 느끼세요?

"학교에서는 권력이나 재력보다는요. 진상 학부모가 오히려 힘이 센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민원 들어오는 게 제일 힘든 거고, 그 엄마가 수시로 학교 오고 계속 클레임 걸고 이러면 그걸 무마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피해자 측 엄마한테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 막는 학교도 있어요. 그래서 목소리 크고 좀 비논리적이고 그런 사람들이 더 힘을 갖는 것 같던데요.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보는 거 같아요. 상식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안 된다고 하면 끝까지 가는 거죠."

-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조손가족이나 한부모 가족, 가정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제도적으로 더 보호받기보다는 오히려 부잣집 학생들은 가지 않아도 될 시설에 보내지고, 그렇게 더 버려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제도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셨죠.

"그렇죠. 그러니까 제 아이 학교폭력 경험이 없었으면 전혀 관심도 안 뒀을 아이들이죠. 경찰, 검찰, 법원까지 그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 거기서 만난 아이들, 부모님들 보니까 초등학교 학생인데 자전거를 훔쳐서 법원까지 오더라고요. 왜 여기까지 왔을까. 훔친 자전거를 배상해줬으면 여기까지 왔겠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조손가족이라 할머니가 케어할 수 없다고 그냥 시설에 보내죠. 부모가 있더라도 이혼했거나 밤에 일을 하셔서 학생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든지 하면 똑같이 기관에 보내지거든요."

- 저는 취재를 하면서 학교폭력 해결의 첫걸음이 학부모와 교사의 불신과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힘을 합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학생이 있지만요.

"그쵸. 저도 교육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 전에는 학부모 커뮤니티가 훨씬 더 친숙했어요. 자주 접속했죠. 그때 내 아이한테 잘해주는 교사보다 내 아이한테 못해주는 교사들 얘기를 하게 되거든요. 부모 교육할 때 제가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무래도 어머님들이 많으시니까, 애 앞에서 아빠 욕하지 말고, 선생님 욕하지 마시라. 이 두 가지를 꼭 하지 말라고 해요. 하나도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말씀 드리죠."

- 4.12 종합대책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학폭 조치의 생기부 기재 기간을 연장했잖아요. 그런데 연장한 걸 떠나서 피해 학생한테 물어보고 피해학생의 동의을 받아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다 피해학생에게 물어보지 절차들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가해 학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해학생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트램펄린, 일명 '방방이'
ⓒ 게티이미지
 
- 이런 사안도 학폭위 심의까지 가나, 하는 사례를 알고 계신 게 있다면요.

"방방이(트램펄린)라고 하는 놀이기구가 있잖아요. 그거 하다가 넘어졌는데 그걸 신고했다는 거예요. 이 사안 심의 소위에 7명의 심의위원이 참석했는데 4명이 찬성해서 학폭이라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 같이 놀다가 다쳤는데 학폭이 됐다는 건가요.

"그냥 심의위원회가 학폭이라고 하면 그냥 학폭인 거죠. 취재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피해당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면 돼요. 걔가 나한테 부딪혔는데 걔가 평소 나에 대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에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이걸로 피해자 되고 가해자 되는 거예요. 피해자가 그렇게 느꼈다고 하니까요.

제가 상담한 사례도 있었어요. 주짓수를 배우는 아이가 있었어요. 주짓수가 어떤 동작인데? 궁금해 하길래 그럼 내가 해볼게, 이러면서 동의를 구했는데, 미처 상대방 아이가 대답하기 전에 그 동작을 했던 거죠. 그러다가 다친 거고요.

사실 심각한 일은 아니잖아요. 친구 사이였는데. 근데 그게 이제 나중에 가서는 카톡으로 신고가 됐고, 사과를 제대로 안 했다고 하면서 일이 커졌죠. 그때 당시 주짓수한 친구가 사과를 안 하면서 걔가 나한테 모멸감을 줬다, 이런 이야기가 돼버린 거죠. 그렇게 가해자가 되는 거죠."

- 우연한 갈등 상황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 일이 주변에 와전되고 어느날 학폭으로 신고가 되고… 그런 사안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달라지는 거죠."

3. 학폭은 맞폭을 낳고 변호사들만 신났다

- 학교폭력의 범위와 관련해선 현재 법 제2조의 정의가 너무 포괄적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학폭 아닌 게 없을 정도라는 비판이 있는데요.

"그렇죠. 따돌림부터 모든 게 있는데 어떤 것도 다 학교폭력이 될 수 있어요."

- 그래서 이제는 맞폭(당사자 쌍방이 서로에게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것)이 굉장히 늘어나서 이제 절반 가까이 됐다고도 하더군요.

"저한테 상담하시는 분들도 그래요. 내 아이가 지금은 가해학생으로 신고됐지만, 걔(피해학생)가 우리 아이를 가해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우리가 피해자였는데도 그냥 지나갔지만, 나도 그러면 이제 신고하겠다고."

- 피해학생을 우선해서 보호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가해학생도 선도 과정에서 제대로 반성하고, 다시 학교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살펴야 하는 건데요. 정말 연진이 같은 애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쵸. 그런데 학부모들이 그런 맥락을 보지는 않거든요. 변호사가 이런 말도 했어요. 한 대를 때리든 열 대를 때리든 폭력은 폭력이고, 법에 정한 구성 요건에 해당하면 무조건 범법행위라는 거죠."

- 구성 요건에 해당하면 폭력이고, 범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다른 사정은 양형에서 고려되는 거고요. 그래서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되게 많이 답답했었어요. 이런 사정들, 맥락들은 전혀 반영이 되는 게 아니구나. 어떤 동기가 있었다고 해도 그 맥락이나 동기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죠.

몇 호 조치를 하느냐에만 목을 매요. 법을 만드는 사람조차도 정말 중요한 거는 간과하고, 어떻게 보면 부차적인 거에만 목을 매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법은 점점 더 누더기가 되어가고..."

- 학교폭력법 개정 과정에서 명백하게 이익보는 집단이 하나 있어요.

"변호사들이죠."

- 학교나 교육지원청에서 학폭위 절차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 제도의 취지도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보호와 선도에 있다고 안내한다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당장 변호사를 찾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는 학폭에 관해서는 메뉴얼을 배포하면 어떨까 싶어요. 아주 기초적인 매뉴얼이라도 사안에 닥쳐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아 이렇게 진행이 되는 거구나', 인지만 하고 있어도 그런 불안감이나 아니면 변호사 선임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4. "너 고발할 거야, 변호사 선임해!"

- 당국은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늘상 말합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말 자체가, 인터뷰 많이 해보셔서 알겠지만, 근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거는 갈등이잖아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갈등 상황이 안 생길 수가 있냐는 거죠."

 
  "너 고발할거야. 변호사 선임해!" 어른 흉내내는 아이들.
ⓒ CC0
 
- 아주 공감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주목하면 안 되고, 그 폭력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갈등 상황, 그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힘의 우위가 작동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어른들이 학생들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한번 돌아봐야죠. 기성세대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이들은 똑같이 따라하는 거예요. 요즘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초등학생밖에 안 됐는데도 '너 고발할거야. 변호사 선임해!' 이런 얘기를 학생들이 한다는 거예요.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했더니 '쟤네 아빠가 변호사다' '어느 법무법인에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 정말 어른들한테 나쁜 걸 배웠네요.

"예전에는 상담할 때 부모님들이 그런 말씀하셨어요. 학폭위에 변호사랑 같이 가면 효과가 있냐고요. 저는 이렇게 말해요. 변호사 선임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학폭위는 교육적 차원에서 처리하자고 모인 거지 법적 차원에서 처리하자고 모인 게 아닙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제3자입니다. 당사자가 아닙니다. 변호사 대동하고 나타나서 일을 대신 맡겨버리는 부모 모습과 엄마가 아빠가 직접 해결하는 모습, 어떤 모습을 아이 기억에 남기겠습니까? 부모님이 나서서 내 아이 문제를 해결하셔야죠.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려요. 변호사를 선임했다, 민사로 갈 거다, 이런 얘기를 듣는 순간 아 저 사람(상대편 보호자)하고는 이제 말이 안 통하겠구나, 법적으로 하겠다는 얘기구나, 이 마음이 딱 드는 거예요."

- 교사들의 고충도 많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가해자 엄마든 피해자 엄마든 선생님들이 조금이라도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반발하시죠. 상담할 때도 보면 어떤 분은 '그 교사를 내가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만들 거다, 어떻게 해서든!' 이런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 그런 분께는 어떻게 상담해드리나요.

"선생님은 피해학생 선생님이기도 하고 가해학생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학생을 편드는 게 아니다, 모든 아이를 다 교사로서 대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씀을 드리는데요. 내 아이한테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렇게 섭섭한 마음이 드시는 거죠."

- 최소한의 믿음과 신뢰가 무너져 있는 상태입니다.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야 될까요?

"사실은 모든 갈등의 문제는 흐름이 막혀서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학부모와 교사의 소통 창구가 없는 거죠. 아이가 공부 잘하고 학부모위원이나 운영위원이나 돼야지 학교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발언권이 있지, 진짜 공부도 못하고 뭔가 내세울 거 없는 아이들 보호자는 학교에 안 가요.

학기 초에 학부모 상담하는 주간에 제가 가면 선생님들이 빠짐없이 하는 말씀이 있어요. '정말 상담 오셔야 될 분은 안 오시고, 상담 안오셔도 되는 분들만 상담을 오신다.' 이렇게 얘기하죠."

- 이게 정말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믿지 못할수록 더 서로에게 불이익이 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거든요. 학부모끼리도 그렇고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이게 정말 저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불신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학교폭력 양상이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나라가 더 심각해지는 건 그거지 학교폭력을 근절한다고 법을 강하게 한다고 근절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근데 그걸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여론에 떠밀려서 누더기 법안을 만들어내는 그런 건 이제 좀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게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가는 거라는 생각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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