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수 1심 무죄…법원 “매우 부적절, 그러나 처벌규정 없다”
고(故) 이예람 중사 사망 사고를 수사한 군검사에 전화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혐의(면담강요죄 등)로 기소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 전 실장에게 사건 관련 정보를 넘긴 양 모 군무원과 당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허위사실을 흘린 정 모 중령은 유죄가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정진아)는 29일 오후 열린 선고기일에서 전 전 실장에게는 무죄, 양 모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정 모 중령에게는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매우 부적절한 행위” 질타…그러나 “처벌 규정 없다”
전 전 실장은 2021년 7월, 앞서 군대 내 성추행 피해를 겪은 뒤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제20 전투비행단 소속 이예람 중사 사건에 대해 재차 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담당 군검사가 사건 처리 관련자 일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전화해 “잘못한 거다”“이렇게 적힌 게 사실이냐”“근거가 있으니 기재한 것 아니냐” 등의 말로 압박했다. 전 전 실장은 수사와 관련된 면담을 강요하고 위력을 행사한 혐의로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50분에 걸친 선고에서 “당시 수사상황과 언론을 통해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던 상황에 비춰보면 언행을 더욱 조심하고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행동을 자제했어야 한다”며 “수사의 공정성과 신빙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것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였음을 분명히 지적한다”고 밝혔다.
다만 전 전 실장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특가법) 제 5조의 9 ‘보복범죄의 가중처벌’ 조항은 범죄 신고자나 증인, 수사참고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규정이고, 수사·재판 업무를 맡은 기관의 당사자를 보호하는 규정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 전 실장이 전화를 건 군 검사는 이 법령으로 보호할 수 없고, 따라서 전 전 실장이 특가법을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특가법이 기존에 있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가중하는 조항일 뿐, 그 자체로 새로운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특검이나 소방관 등 일부 공무원을 위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별도의 벌칙규정은 있지만, 검사‧군검사를 포함한 일반 공무원을 위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어 가중처벌할 기초가 되는 죄명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이며, 그에 따른 어떤 처벌을 할지 법률로 정해두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따라 기존에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군 검사에 대한 위력행사를 특가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위와 같은 행동이 형사법적으로 정당화되고, 향후 유사한 행동이 다시 반복돼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군사법원 등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면서도 “죄형법정주의는 헌법에 기초한 형사법의 대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영장실질심사 정보 옮기고, 허위 사실 흘린 이들은 유죄
군무원 양 씨는 이예람 중사를 성추행한 장 모 중사의 구속 전 피의자신문 관련 정보를 유출한 혐의에 대해 공무상 비밀누설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가 인정됐다. 기자 3명에게 ‘고 이예람 중사가 개인적 사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취지로 말했던 정 중령은 허위사실로 이 중사와 남편의 명예를 훼손하고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이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날 선고에는 고 이예람 중사의 부모님 등이 직접 참석했다. 이 중사 어머니는 이 중사가 쓰던 손수건과 군번줄을 꼭 쥐고 자리를 지켰지만, 전 전 실장의 무죄 부분 설명을 듣고 놀라 한동안 법정을 나가 있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이 중사 아버지는 “그간 재판 과정에서 항상 유족들 이야기를 들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처벌할) 법이 없어 무죄지, 사실상 전익수는 유죄나 다름없는 판결”이라고 밝혔다. 전 전 실장은 선고 직후 법정을 나가며 기자들의 질의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판결인 만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이 중사 유족에게는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송구스럽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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