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와 커피, 탄산수... '가스의 맛' 아시나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기자말>
[이훈보 기자]
▲ 커피를 내리는 모습 |
ⓒ 픽사베이 |
보통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부으면 향과 함께 몽글몽글 거품이 올라오죠. 커피가 품고 있던 가스가 물에 닿으며 올라오는 과정입니다. 오늘은 이 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커피가 품고 있는 가스는 로스팅 과정에서 가열로 인한 화학반응을 거쳐 생성되는 이산화탄소이고, 이것은 커피의 맛에 여러 변수로 작용합니다. 커피와 물이 만나는 과정에 개입하기도 하여 가스가 너무 많을 때는 커피의 성분이 충분히 녹아나오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그런 커피에서는 향과 질감에 영향을 끼쳐 결국 맛을 변화시킵니다.
그런 이유로 커피를 준비할 때 가스를 관리하는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서는 보통 3-5일 가량의 기간, 즉 커피 볶은 직후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만 배출시키는 디개싱(degassing) 기간을 두고 커피를 운용하고 추출에 영향이 없는지를 시시때때로 확인하며 커피의 퀄리티에 신경을 씁니다.
이런 상황이니 커피의 가스는 유통 과정에서도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됩니다.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커피 봉투를 잘 살펴보면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로마 밸브라 불리는 것으로 로스팅 이후에 계속 발산하는 가스를 봉투 밖으로 내보내면서 외부 공기는 들이지 않는 역할을 합니다. 불필요한 산화와 과도한 팽창을 막아주며 향미를 보존하는 역할도 합니다.
▲ 바나나 |
ⓒ 언스플래쉬 |
가스와 맛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기 위해 이번에는 바나나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가스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늘 바나나를 예로 들곤 하는데, 바나나는 구하기 쉽고 누구나 먹어봤으며 여러 제품으로도 변형된 바나나 향을 경험해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맛을 본 만큼, 가스가 바나나의 맛에 끼치는 영향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바나나는 보통 두꺼운 껍질에 쌓여있고 손으로 껍질을 벗기기 쉬워 밀봉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사실 그 안에는 가스가 꽤 있습니다. 껍질을 벗겨 한 입을 베어 물고 가만히 씹다보면 입안이 먹먹해지면서 조금은 답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바나나의 향미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씹다보면, 분명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바나나를 삼키지 않고 공기를 '후후' 밖으로 불어내고 다시 씹어보면 조금 더 선명한 바나나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껍질을 조금 튿어두고 가스가 빠지길 기다렸다가 맛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말린 바나나와 신선한 바나나의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보통의 경우 이렇게까지 바나나의 맛을 고심하지는 않죠. 가스는 보이지 않고, 바나나는 먹어봤던 그 바나나의 맛이니까요. 하지만 위의 비교를 해보면, 분명 가스가 맛의 인지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스가 맛에 영향을 끼치는 예로는 탄산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향이 들어가지 않은 플레인 탄산수의 성분을 보면 물과 이산화탄소 밖에 적혀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탄산수를 마시며 따끔한 느낌과 신맛 쓴맛을 모두 느끼게 되죠. 맥주에 가스를 주입하는 생맥주도 마찬가지 입니다. 커피에서도 니트로 커피라는 유행이 한번 왔다 갔었습니다.
커피 맛의 변수
다시 커피이야기로 돌아와서. 로스팅 된 커피가 반드시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다면 커피에서 가스의 맛은 변수이자 친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커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 가스를 어떻게 달래어 어떻게 함께 가야하는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가스의 맛이 완성된 커피 한잔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핸드드립에서는 이를 '뜸을 들인다'는 표현으로 물을 붓고 시간을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몽글몽글 올라오는 기포를 바라보며 균형을 추측하는 과정이죠. 이러한 가스를 조금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관리하는 커피도 있습니다.
콜드브루(더치)커피가 그렇습니다. 이 경우 점적식, 한 방울씩 찬 물을 떨어뜨려가며 가스를 날리는 방식으로 완성하여 극단적인 매끈함을 만들어 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간이 흐르는 만큼 향미의 손실은 있지만, 가스를 컨트롤 해 맛을 완성시킨다는 것만큼은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핸드드립의 경우 뜸을 들인다는 표현으로 가스를 컨트롤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었죠. 보통 30초 정도를 시작점으로 잡습니다. 취향이나 가스의 양을 가늠하는 기준에 따라 20초에서 40초, 극단적으로는 1분 이상의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 매장에서도 에스프레소용도로 로스팅 된 커피를 내릴 때에는 맛의 완성도를 위해 1분의 뜸을 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로스터리에서 운용하는 커피이니 로스팅 일자가 가깝고 그만큼 커피에서 뿜어내는 가스의 양도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을 섬세하게 관리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만약 커피가 조금 오래되었다면 꼭 30초의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30초는 좋은 기준점이지 절대적인 기준점은 아니기 때문이죠. 보관 상황이나 커피에 물을 부었을 때 보여주는 반응에 따라, 시간을 조금 당기는 것도 좋은 추출에 도움을 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컨트롤 해야 하기에 어렵지만, 물을 부어보면 커피는 기포의 형태로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만 관찰하면 어렵지 않게 가스와 커피의 맛의 균형이 빼어난 한 잔의 커피를 즐기실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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