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가 안 돼유" 소리에 쿵 내려앉은 가슴, 아프지 마세요
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기자말>
[이상자 기자]
요즈음 마을 학교에 수업 가는 날이면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한쪽 눈을 실명해 한쪽 눈으로 생활하는 장아무개 학생은 발치하고부터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더니 마을 학교에 오면 누워있다가 수업을 했다. 그러더니 아예 못 나오신다. 게다가 그나마 볼 수 있는 한쪽 눈에는 염증까지 생겨 치료 중이라, 벌써 여러 날 결석이다.
설상가상으로 반장님은 소화가 안 되어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음식을 먹기가 싫어서 죽으로 식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마을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가셨다. 죽으로 식사하면서도 숙제는 꼬박꼬박 해왔다. 정신력이 대단한 반장님이다.
마을 학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늘도 반장님이 안 보인다. 4일째 결석이다. 서둘러 책가방을 내려놓고 증상은 어떠신지 물으려 반장님에게 전화했다.
▲ 마을학교 비대면 수업 0대 어르신들이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못해,?코로나19때 과제를 대문이나 우체통에 과제물 봉투를 매달아 주고 받는 방법으로 비대면 수업을 했다. |
ⓒ 이상자 |
그걸 듣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3일만 죽을 먹어도 기운이 없는데 벌써 20여 일이라니 어떻겠는가. 나는 위내시경 검사를 해보시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반장님 왈, 작년 12월에 위내시경 검사 했을 때 위염이라고 했었단다. 그래서 이번 종합병원에 입원 중일 때 의사가 위내시경 검사하자고 해도 안 했다고 했다.
나는 의사마다 판독이 다르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그랬더니 반장님은 본인 아픈 것은 본인이 잘 안다고 했다. 무언가 먹고 체했는데, 그렇게 자꾸 체하기를 반복해서 그런 것 같아 당장은 위내시경 검사는 하지 않고 참아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걱정되었다. 소화가 안 된다고 한 지가 20여 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마음이 무겁다. 그동안 공부하다 유명을 달리하신 분 생각, 요양원 가신 분 생각에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끝냈다. 절대 반장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기를, 빨리 쾌차하기를 기도하면서.
아파서 결석하는 반장님 작품을 꺼내 보다
이 마을 학교에서 조교님 덕분에 공부하던 90세 김아무개 학생도 작년에 소천하셔서 가슴이 아팠다. 점잖고 공부도 잘하시던 이아무개 학생은 치매로 요양원에 가셨다. 지난번 다른 마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던 조아무개 학생이 며칠 앓다가는 갑자기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었다. 조아무개 학생도 혼자 살면서 밭에 고구마, 마늘, 김장 채소 등을 가꾸어 자식들에게 보내주던 분이셨다.
성실한 반장님이 오래 편찮으니 온몸의 기운이 쫙 빠져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가방을 풀고 숙제 검사를 하려다가 반장님이 그동안 해온 숙제를 찾아보았다. 사진으로 저장해뒀던 것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반장님은 남편을 일찍 잃고 남매를 혼자 키우다 보니 결단력 있고, 의리도 있고, 결심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반장님의 작품을 재빠르게 찾았다. 바느질하는 그림에 쓴 글이 눈에 확 띄었다.
"옛날에는 한복도 꼬매고 무명실로 양말도 뜨고, 장갑도 뜨고, 호롱불 앞에서 수도 많이 놓았는데... 지금은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히미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서툴지만 정성으로 그린 반장님의 바느질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어렸을 때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나이가 들었어도 엄마라고 불렀다. 우리 엄마는 낮에 밭일, 길쌈, 부엌일 하시고 밤에는 항상 바느질하셨다. 엄마 모습이 잠시 섬광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자다가 눈뜨면 엄마는 언제나 호롱불 아래서 가족들 입히려고 바느질을 하고 있다.
서툰 그림을 보니 떠오른 엄마 생각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쉬거나 놀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이곳 마을 학교 학생들은 내 엄마처럼 항상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 세끼를 죽으로 20여 일째 살고 계시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불안하다 못해 가슴이 떨린다.
▲ 김학생 시화작품 코로나 19 때 시화작품 |
ⓒ 김아무개 학생 |
<코로나> -김00-
지난 한 해는 한평생 살면서 듣지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코로나19 질병이 연초부터 발생하여 국내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 진심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한 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이 바뀌어 문 밖에만 나가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사회적 거기 두기, 비대면 수업, 모든 모임이 중단되어 우리 문해교육도 중단했습니다. 코로나야! 멀리멀리 사라져라. 우리 선생님과 한자리에서 공부하는 날만 기다려진다.
(※여기서 말한 비대면 수업이란? 80대 어르신들이라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못해, 코로나19때 선생이 과제를 만들어 대문에 꽂아놓으면, 학생들이 과제를 해서 다시 대문에 꽂아 놓기로 약속하고 다시 과제를 가져다 놓고 수거해 가던 방법을 말한다.)
'코로나 시기에도 글을 참 잘 쓰셨구나! 제발 어서 쾌차하세요' 생각하며 반장님의 다음 글을 찾았다. 턱을 고이고 먼 곳을 바라보며 대문 앞에 앉아있는 소년의 그림에 쓴 글이다.
"너는 무슨 고민이 있기에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느냐? 근심 걱정 다 버리고 넓은 들판에 나가 운동이나 하려무나."
꽃밭에 과일바구니 놓고 나비를 잡으려는 소녀의 그림에 쓴 글은 이렇다.
▲ 나비와 소녀 마을 학교 숙제 |
ⓒ 김아무개 학생 |
이 작품을 칠판에 붙여 놓았을 때 학생들이 특히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났다. 할머니 닮아서 예쁘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고 내 답글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내 답글은 이랬다.
"어머나! 어머나! 누굴 닮아서 예쁜가? 했더니 할머니를 닮아서 이리 예쁘군요. 정말 예뻐요. 예쁘게도 생겼는데 옷도 명품으로 입히셨네요. 할머니 하고 놀렴."
이렇게 재미있게 글 쓰신 우리 반장님, 이번엔 아프기 시작해 죽 드실 때 해온 숙제다. 소녀가 날개 달고 꽃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이다. 내가 답글을 썼다.
"너는 나비냐? 사람이냐? 꽃 속에서 시를 쓰고 있나 보다. 좋은 시 많이 써서 넓은 세상에 알리거라."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편찮으신데도 숙제를 하셨군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그런 훌륭한 정신력으로 평생을 살아오셨으니 자손들을 잘 키워 내셨을 겁니다.
▲ 꽃과 소녀 마을 학교 숙제 |
ⓒ 김아무개 학생 |
이렇게 글도 그림도 즐겁게 잘 그리고 쓰던 86세 학생이, 몸이 아파 20여 일째 죽만 드시고 있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어르신학생들 수업하면서 더는 내 수업 중에 별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니 그런 일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싫다. 글을 쓰며 또 한번 기도했다.
'반장님, 대학병원 가서 검사하시고 건강 찾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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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 스토리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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