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방송 뚝, 원인도 몰라" 한국인 206명 공포 떨게한 불시착
“비행기에서 무슨 폭발음이 들리니까 이대로 죽나 했죠.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었어요. 코로나19 유행 이후 첫 여행이었는데….”
지난 28일 인천을 떠나 베트남 푸꾸옥으로 향하던 베트남 저가항공사(LCC) 비엣젯의 여객기가 기체 문제로 필리핀에 불시착하며 휴가철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 승객들의 여행 첫날은 공포 그 자체가 됐다.
이날 오전 2시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비엣젯 VJ975에선 출발 한 시간 뒤부터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 비행기 좌측 날개 엔진 부분에서 폭음과 함께 붉은 스파크형 불꽃이 수차례 발생했다. 이 소리에 잠에서 깬 창가 쪽 승객들은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해당 여객기는 에어버스사의 A321 기종으로 알려졌다.
비행기에 탔던 백모(36)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대로 바다에 떨어지는 건가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아내, 두 자녀와 함께 코로나19 유행 이후 첫 해외 여행지로 베트남을 선택한 그는 비행기가 땅에 닿을 때까지 한숨만 쉬었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날개 쪽 좌석에 앉아 혼자 불꽃을 목격한 그는 가족에게는 비행기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다. 다른 탑승객들도 “큰 소리와 함께 빨간불이 번쩍거려 잠에서 깼다”는 등 백씨와 같은 불꽃을 봤다고 전했다.
곧이어 기내 방송에선 항공기가 안전 문제로 필리핀에 불시착할 것이라는 공지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공지가 중간에 뚝 끊기고, 구체적인 원인도 알리지 않아 기내 혼란은 더 커졌다. 아내와 함께 비행기에 오른 정모(63)씨는 “영어로 방송이 나온 이후 한국인 승무원이 불시착에 대해 공지는 했지만, 그냥 문제가 있다고만 했다. 정확한 이유를 몰라 필리핀 상공을 빙글빙글 도는 동안 아내와 함께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 비행기에 탑승한 214명의 승객 중 한국인 승객은 전체의 약 96%인 206명이었다. 이들은 필리핀 루손 섬 북부 일로코스 노르테주의 라오아그 공항에 발을 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착륙 당시 라오아그 공항에는 소방차 2대가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승객들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비엣젯 측의 정확하지 않은 일정 안내와 미숙한 대처로 대합실 곳곳에선 신혼여행 온 부부 등 여행을 망친 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곧 푸꾸옥으로 갈 대체 비행편이 올 것이라는 공지가 여러 차례 번복됐다. 승객들은 와이파이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통신도 어려운 공간에서 약 12시간을 대기했다. 대체 항공편으로 푸꾸옥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된 시간보다 16시간 30분이나 지난 뒤였다.
AP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민간항공청(CAA)의 에릭 아폴로니오 대변인은 “엔진 고장은 보고되지 않았다. 조종사가 비상사태 선포 없이 관제탑에 ‘기술적 문제’가 있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객들은 “기장이 필리핀에서 승객들에게 설명할 당시에는 엔진에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사태 발생 원인에 대한 설명조차 말이 다르다”고 비판 중이다. 비엣젯 인천 지점은 중앙일보에 “아직 본사 차원에서 정확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비엣젯은 지난 2013년부터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운항을 시작한 뒤 꾸준히 노선을 늘려왔다. 현재는 인천에서 하노이, 호치민, 다낭, 하이퐁, 나트랑, 푸꾸옥, 달랏, 칸토로 향하는 8개 항로 등을 운영 중이다. 다만 지난 2월에도 나트랑행 비엣젯 VJ839편이 기체 결함으로 주기장을 출발하는 과정에서 기체 이상이 발견돼 공항 터미널로 되돌아오는 램프 리턴(Ramp Return) 이후 대체편으로 출발했다.
김홍범·최서인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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