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생활]집보다 더 많은 시간 보내는 직장, 그 안의 폭력

2023. 6. 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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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와 박 씨 두 사람은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박 씨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뭔가 해결책을 주고 싶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은 김 씨는 박 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냅다 쳤다.

왼쪽 얼굴을 맞은 박 씨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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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와 박 씨 두 사람은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아파트 경비원이라 입주민들의 민원을 함께 해결해 주어야 할 일이 많았고 고향도 같았다. 바로 옆 라인이라 대화할 기회도 많았다. 정치적 성향도 같았다. 그들은 친해질수록 개인적 일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서로의 고충을 토로하고 해결책을 같이 모색하기도 했다.

항상 만면에 웃음을 띠는 김 씨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큰아들이었다. 아들은 직장생활을 몇 개월 한 후 계속 집에서만 지냈다. 방 안에서 인터넷 게임을 하면서 식사를 해결했다. 김 씨는 이 이야기를 같은 고향 동료에게 토로하였다. 박 씨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뭔가 해결책을 주고 싶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김 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자신의 사정에 대해 동정하는 이야기를 들은 김 씨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노를 느꼈다. 그는 박 씨를 불러내어 따졌다. 박 씨는 무척이나 서운했다. 두 사람이 서로 멱살을 잡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은 김 씨는 박 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냅다 쳤다. 왼쪽 얼굴을 맞은 박 씨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박 씨는 근처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사망한 박 씨 부검에서는 얼굴에 단 하나의 근육 출혈이 확인되었고 전신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흔적도 없었다. 박 씨의 뇌에서는 지주막하출혈과 뇌실 내의 출혈이 확인되었다. 보통 이러한 출혈은 대뇌의 동맥류라고 부르는 질병이 고혈압에 의해 터지지만, 폭력의 상황이 있을 때는 목 뒤편의 척추동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조심스럽게 박 씨의 목 뒤를 부검하였다. 얼굴이나 목 양쪽, 특히 귀밑 등에 강한 외력이 가해지면 목뼈가 회전하면서 목뼈의 옆에 있는 작은 돌기 모양의 외측돌기(lateral process)가 부러지면 이 부위를 통과하는 척추동맥(vertebral artery)이 터지는 경우가 있다. 척추동맥이 파열되면 뇌의 아래쪽 부위를 중심으로 출혈이 생기고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한다. 뇌의 출혈이 발생하면 머리에 둘러싸인 뇌가 부풀어 오르면서 뇌 압박이나 뇌압 상승으로 갑자기 사망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로 힘이 매우 센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약한 상대에게 가해진 폭력에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 씨는 60대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한 결과였다. 검찰은 살인의 의도가 없다고 보았고, 진정한 사죄와 합의를 고려한 재판부는 실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

직장은 제2의 가정이다. 가족보다 직장 동료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직장에서 끈끈한 동료애가 형성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오히려 직장 내 갈등과 혐오가 폭주한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후 원함으로 보복 살인과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위 사건은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갈등을 폭력이라는 일시적 분풀이에 의지한 결과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계질서와 불행했던 근현대사에서 경험한 폭력에 의한 문제 해결이 자칫 사람의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를 넘어설 때가 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신체적 폭력만으로 한정되어서도 아니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든 발생하며 이에 대한 해결은 상호 이해를 근거로 한 대화여야 한다. 폭력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발생케 한다.

우리 사회가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성숙한 대처가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습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유성호 법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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