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성서’도 소장…국립세계문자박물관 인천에 개관

남수현 2023. 6. 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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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및 프레스투어에서 참석자가 쿠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홍수신화를 기록한 쐐기문자 점토판,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카노푸스 단지,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서….

전 세계 문자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하 문자박물관)이 29일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서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문을 연 문자박물관은 정부가 2014년 기본구상을 시작해 10여년에 걸쳐 건립한 것으로,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도 프랑스 샹폴리옹박물관, 중국 문자박물관에 이은 세 번째 문자 전문 박물관이다.

개관식에 참석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창제 원리가 분명한, 고유의 체계를 갖춘 유일한 문자인 한글을 가진 대한민국에 세계문자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며 “박물관이 한글과 세계의 문자를 잇는 역사·문명의 통합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계 문자자료 543점 보유…‘구텐베르크 성서’ 원본도


29일 오전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개관식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주원 관장 등 내빈들이 개관 '문자의 빛' 점등 세레머니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예산 720억원(공사비 620억, 유물구입비 100억)이 투입된 문자박물관은 총면적 1만5650㎡로, 지하 1층(상설전시실), 지상 1층(기획전시실·어린이체험실), 지상 2층(카페테리아) 등 총 3층 규모로 지어졌다. 기원전 2100년 무렵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시기의 전 세계 문자자료 244건 543점을 확보했고, 이 가운데 수장고에 보관 중인 유물을 제외하고 180여점이 전시 중이다.

박물관의 핵심인 상설전시는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마련됐다. 흰색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외관의 박물관은 내부 관람 동선 또한 마치 돌돌 말린 기다란 종이를 따라 인류 문자사를 되새기는 느낌으로 펼쳐진다.

29일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 전시된 '원형 배 점토판'. 기원전 2000~1600년 사이 만들어진 유물로 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와 유사한 홍수 신화를 기록하고 있다. 남수현 기자


전시실로 들어서면 바로 마주하는 ‘원형 배 점토판’은 기원전 2000년~1600년 사이에 만들어진 희귀한 고대 유물이다. 고대 서아시아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홍수 신화인 ‘아트라하씨스 신화’를 아키드어 쐐기문자로 기록한 것으로, 신이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려 하자 주인공이 배(방주)를 만들어 위기를 극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준호 전시운영부장은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원형이 되는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텐베르크 성서의 ‘여호수아서’(1454년경), 서양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불리는 ‘박물지’(1476년), 마틴 루터가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루터 성서’(1523~1524년) 등도 문자박물관이 자랑하는 주요 원본 유물이다. 특히 구텐베르크 성서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400~1468)가 발명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성서로, 박물관 소장품은 1282쪽 분량의 완본 중 ‘여호수아서’를 담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 성서로부터 본격적인 상업 출판이 시작되고, 정보의 대중화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본다.

박 부장은 “유럽에 가야만 볼 수 있던 구텐베르크 성서의 원본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아시아권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일본 게이오대학교를 제외하면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유일하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꼽히는 구텐베르크 성서의 여호수아서(1454년경). 남수현 기자


이밖에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샤브티(기원전 595~589년)와 카노푸스 단지(기원전 664~525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깨진 토기에 편지를 남긴 콥트어 오스트라카(7~8세기), 무함마드에게 전해진 알라의 계시를 아랍문자로 기록한 이슬람교 경전 쿠란(1300~1330년) 등이 문자박물관에서 봐야 할 진품 유물로 꼽힌다.


“반출 불가 유물은 만질 수 있는 복제품으로…”


다만 고대 법률을 비석에 새긴 ‘함무라비 법전’(루브르박물관 소장), 인류 최초의 알파벳이 기록된 ‘세라비트 엘카딤 스핑크스’(영국박물관 소장) 등 원본을 해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은 정교하게 본뜬 복제품을 전시한다. 전시 중인 180점 가운데 복제품은 44점(24%)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함무라비 법전(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등 세계 문자사에서 중요하지만, 확보가 어려운 유물은 정교하게 복제해 전시한다. 남수현 기자


개관에 앞서 27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박준호 부장은 “복제품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기원전 2000년 등 초창기 유물의 경우 최근에는 발굴 자체도 잘 안 되고, 발굴되더라도 국외 반출이 허가되지 않는다”며 “(진품 확보가 어려운) 대신 문자사에서 중요한 유물들은 3D 스캔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복제해 소개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런 복제품 중 절반 이상(25점)을 관람객이 직접 만지며 촉각 체험이 가능한 전시품으로 기획해 아쉬움을 달래려 했다는 게 박물관 측 설명이다.

박혜원 자료관리부장은 전체 소장품 규모에 대해 “신생 박물관이다 보니 유물 수집의 역사가 길지 않아 수량 자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약 5년간 전시 전문위원 등의 자문을 얻어 꼭 필요한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내실 있는 컬렉션을 갖췄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29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외관 전경. 사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상설전시 외에 개관 기념으로 마련된 특별전시는 ‘긴 글 주의–문자의 미래는?’이라는 주제로 11월 19일까지 운영된다. 긴 글을 기피하고 그림·영상 등 비문자적 소통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난 현상을 돌아보며 문자와 비문자가 가진 소통의 역할을 통찰한다. 첫 번째 어린이 전시 ‘깨비와 함께 떠나는 문자여행’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체험과 누리과정을 연계한 콘텐트로 쉽고 재미있게 문자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개관 기념행사도 다양하다. 30일에는 ‘박물관, 문자를 이야기하다’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한글과 세계 문자 간의 교류와 연대를 모색한다. 김주원 박물관장이 기조 강연을 하고, 울프 죌터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장, 츠키모토 아키오 일본 고대오리엔트박물관장 등이 발표자로 나선다. 세계 문자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박물관 일대에는 외벽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내달 1일에는 박물관을 둘러싼 송도 센트럴파크 잔디광장에서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문자여행’을 주제로 조윤성 피아니스트 등의 음악 공연이 펼쳐진다.

박물관은 30일부터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 관람, 매주 월요일 휴관.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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