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투톱 생포하려다 들통…프리고진, 모스크바 진격 급변경"
러시아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당초 러시아군 수뇌부의 신병 확보만을 목표로 했지만, 이 계획이 틀어지면서 급히 모스크바 진격으로 방향을 튼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복수의 서방 정보기관 당국자를 인용해 “프리고진은 당초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 겸 우크라이나전 총사령관 두 사람의 신병을 확보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국방 참모 투톱’인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의 러시아 남부 군사시설을 방문했을 때, 이 둘을 바그너그룹이 사로잡는 게 프리고진의 원래 계획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거사’ 이틀 전 이 정보가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에 넘어가게 됐고, 이를 눈치챈 프리고진이 23일 급히 모스크바 진격으로 계획을 수정했다고 WSJ는 전했다. 정통한 한 서방 정보 기관 관계자는 WSJ에 “프리고진의 원래 계획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다”면서 “이 정보가 러시아 보안 기관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프리고진이 즉석에서 고안한 대안으로 모스크바를 향해 올라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국내 영토 방어를 담당하는 빅토르 졸로토프 방위군 사령관도 27일 현지 매체에 “6월 22일~25일경 시작될 반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프리고진 진영으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혔다. 프리고진이 반역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영·미 정보기관도 통신 도청과 위성 사진 분석 등으로 일찌감치 알고 있었으며, 이 정보는 극비로 취급돼 다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에도 공유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역이 있기 며칠 전부터 바그너그룹이 전차와 장갑차, 이동식 방공망 등을 이동시키고 탄약과 연료를 모으는 활동이 포착됐다면서다.
이 때문에 서방 정보기관들은 러시아 측이 프리고진의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하고도, 러시아 정규군이 프리고진의 모스크바 진격을 막지 못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판단력에 구멍이 생겼다는 의미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 프리고진은 23일 우크라이나를 벗어나 수 시간 만에 러시아의 남부 요충지인 로스토프나도누를 장악했고, 모스크바까지 북진을 거듭하다가 수도를 200㎞ 앞둔 지점에서 철수를 발표했다. 바그너그룹이 1000㎞를 순식간에 이동, 푸틴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가는 데는 약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관련 소식에 정통한 한 당국자는 WSJ에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 반란의 결말은 정규군과 바그너그룹의 모스크바 무장 대치로 끝나게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구 백만 명의 대도시에 군용 공항도 갖추고 있는 로스토프나도누가 너무나 쉽게 바그너그룹의 손에 떨어진 것도 러시아 정규군의 협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을 부르고 있다. 이와 관련 미 뉴욕타임스(NYT)는 바그너그룹과 밀접한 관계였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 통합 부사령관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 반란을 계기로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꿩 먹고 알 먹고’를 노렸다는 서방 정보기관의 평가도 나왔다. 루카셴코는 프리고진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으로 러시아에 존재감을 부각하는 한편, 바그너그룹을 벨라루스에 영구 주둔시키는 것으로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벨라루스를 러시아 연방으로 흡수 통일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해왔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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