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재로 변한 800년 역사, 생생한 그날의 비극

장혜령 2023. 6. 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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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장혜령 기자]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컷
ⓒ 찬란
 
여행 중 노트르담을 두 번 가본 적 있다. 가까이서 보면 숨 막힐듯한 웅장한 위용에 압도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음침하기도 하다. 궁궐 추녀마루 끝의 토우 같은 악마 석상 가고일(빗물을 흘려보내는 설치물)이 자리하고 있다. 고딕건축 양식으로 지어 뾰족한 첨탑과 장미창의 아찔한 조화를 만끽할 수 있다. 센 강에서 보는 노트르담, 지하철역에서 보는 노트르담,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노트르담이 제각각이다. 어디에서도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 세계 가톨릭의 상징이자 파리의 랜드마크가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하지만 4년 전 노트르담 화재로 10시간 동안 활활 타버렸다. 당시 뉴스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게 영화 같았다. 이는 아마도 2008년 국보 1호 남대문 화재 경험 때문이었으리라. 남일 같지 않던 기시감과 뼈아픈 교훈이 교차되었다.

어쩌면... 예견된 화재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컷
ⓒ 찬란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4월 16일 오후 6시 50분경 시작된 화마로 첨탑과 본관 지붕이 소실되었다. 사건은 인재와 건물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누적된 결과다. 1:29:300이라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하나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중간 사고와 300번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법칙)이 대성당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지적한다. 잦은 오작동이 있었음에도 원인을 찾지 않았고, 형식적인 점검으로 방관했으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전 교육을 줄이고 무리한 스케줄을 진행했다. 한 해 수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고 국보가 보관되어 있지만 관리에는 소홀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던 징후가 쌓여 그날의 결과를 만든 인재였다.

파리의 교통은 지옥 그 자체다. 파리에서 운전은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하는 수고로움이다. 건강한 다리가 있다면 걷거나 공유 자전거,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빠르다. 매연과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엄격한 차량 제한과 통제 등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관광지 특성상 사람도 많고 차도 많다. 어딜 가도 북적이기 때문에 현장에 소방차와 인력이 도착하기 힘들었던 점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로 인한 진압 지연은 목조 자재가 대부분인 대성당의 화재를 키워나갔다. 첨탑 주변을 받치고 있던 철골 구조물이 녹으면서 엄청난 온도의 납에 노출되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탑으로 오르는 통로가 극히 좁아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300개 이상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고난과 마주하는 고통도 상당했다. 소방대원들은 1,400도 가까운 온도 때문에 방화복과 모자가 녹거나 화상을 입었고, 유독가스를 흡입하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어갔다.

대성당이 속절없이 타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유산을 보호 절차가 이 영화의 백미다. 성당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쓴 것으로 추정되는 '가시면류관'과 '성 십자가 못' 등. 1,300여 점의 문화유산과 예술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문화재는 돌이킬 수 없어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사제와 대통령은 물론, 먼발치에서 대성당을 바라보며 타들어갔을 세계인의 마음이 영화 속에도 충분히 녹아들어 가 있다.

파리의 심장을 지킨 사람들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컷
ⓒ 찬란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그날의 생생함과 원인, 과정, 결과를 되돌아보는 영화다. 화재, 천재지변, 전쟁 등 위급한 상황에 문화유산을 향한 국가의 대처 방법과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불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고 진화되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보고서처럼 연출했다. 마치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결연한 의지처럼 보인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은 2021년, 그날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내 달라는 공고를 냈고 6천 점 넘게 받은 촬영 장면을 담아 사실감을 높였다. 극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나 실제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한 이유다. 평온한 날 갑자기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놀랐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 신부, 목격자(관광객, 시민), 성당 관리인, 소방관, 문화재 공무원 등의 입장도 살핀다. 재연 장면마저도 실감 나 어떤 것이 실제 상황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사실 고증에 힘쓴 노고가 역력하다.

그날의 악몽을 키운 인간과 이를 해결하는 인간이 동일하다는 명제를 일깨워주며 소방관의 희생정신을 높이 치하한다.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불길을 예리한 관찰과 아이디어로 제압하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지켜내려는 각계각층의 열정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열기보다 더 뜨거웠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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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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