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신장개업' 수준 환골탈태…장·차관·비서관 동시 물갈이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 장ㆍ차관을 비롯해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 등 정부와 대통령실 내 '통일 라인'을 모두 외부 인사로 교체했다. 정부의 대북 인식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신호탄으로, 윤 대통령이 이번 인사 개편을 통해 통일부에 '신장개업' 수준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요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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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할 말' 하는 원칙론자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김정은 면전에서 인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 문제를 내세운 대북 압박 정책을 주저하지 않는 원칙론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호 장관 후보자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1982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6·25 전쟁 연구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후보자의 1980년대 후반까지는 '도서출판 녹두'의 대표로 공산주의 철학서 등을 펴낸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한 적도 있다.
그러다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유학한 뒤 세종연구소 상임객원연구위원과 1999년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한 이후로는 뉴라이트 지식인 모임인 '뉴라이트싱크넷'의 운영위원장을 맡는 등 '뉴라이트 학자'로 활동해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통일비서관과 외교부 인권대사를 역임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월엔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돼 연내 통일부가 발표할 예정인 '신(新) 통일미래구상' 마련을 주도해왔다. 여기엔 윤석열 정부가 그리는 중·장기 통일과 대북 정책의 큰 그림이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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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미 싱크로율 높인다
통일부 차관에 임명된 문승현 주태국대사는 외교부 북미국장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외교비서관 등을 지낸 대표적인 '미국통' 외교관이다. 정부 소식통은 "비(非) 통일부 출신으로 관료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사를 찾던 중 당초 외교부 본부 고위직 후보로도 거론되던 문 대사가 낙점됐다"고 귀띔했다.
문 대사는 2019년 10월부터 약 2년 동안 주미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역임했는데 이때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각급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던 시기다. 당시 종전선언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해 "한ㆍ미 간 시각차가 물밑에선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선의에 의존한 평화"라는 비판을 받는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의 '맹점'을 대미 최전선에서 실감한 인물 중 하나가 문 공사라는 분석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문 공사의 통일부 차관 임명으로 대북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한ㆍ미 간 싱크로율이 보다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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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전문 통일비서관
대통령실 통일비서관에 낙점된 김수경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 교수로 근무하며 국내외 인권문제를 연구했고 이후 통일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북한 인권 연구에 주력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 인권 개선 관련 한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기조에 적합한 인물이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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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신장개업' 요구
앞서 정부 교체기를 포함해 통일부 장·차관이 동시에 바뀐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통령실 통일비서관까지 함께 통일 정책과 관련한 최고위직 3명을 모두 외부 인사로 동시에 교체한 건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와 관련, 그간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에 방점을 두던 통일부 본연의 역할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언론 기고에서 "앞으로도 북한에 계속 일방적으로 퍼주겠다고 한다면 그 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기능 조정과 축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통일부는 이미 인권 및 정세 분석 기능을 강화하고 북한과의 대화 기능을 일부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인도협력국은 '인권인도실'로 확대·개편했고,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인공지능(AI)·빅데이터에 기반한 정보를 수집하는 북한정보공개센터장을 신설하는 등 정세분석국 기능 또한 강화됐다.
반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를 폐지하고 남북 간 연락 기능을 남북회담본부 산하로 넘기는 등 남북 대화 관련 역할은 줄이는 추세다. 현재 남북 통신 연락선은 지난 4월 북한의 일방적 차단으로 중단된 상태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도발만 거듭하는 가운데 통일부는 고위급 인적 개편을 거쳐 당분간 북한 인권, 탈북민 보호, 북한 내부 분석, 대북 제재 관련 업무 등에 집중할 거란 전망이다.
김영호 후보자는 이날 지명 발표 직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원칙을 갖고 북핵 문제를 이행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방안을 만들기 위해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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