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개각]새로운 대북 수뇌부, 모두 '非통일부'…"쇄신 신호탄"
장관에 강경파 김영호, 차관에 외교관 문승현
통일부 역할…교류·협력에서 '대북 압박' 전환
尹, 대대적 체질개선 시도…"대화 문 닫힐라"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차관 후보자에 문승현 주태국대사를 내정하면서 통일부 장·차관이 동시에 외부 인사로 채워졌다. 통일부 수뇌부를 모두 외부에서 수혈한 것은 1998년 통일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통일부의 핵심 업무를 남북 간 '교류·협력'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비롯한 '대북 압박'으로 개편하겠다는 의도로 평가된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장·차관급 인사안을 발표했다. 장·차관 모두 외부 인사로 충원되는 것은 물론 외교부 출신 인사가 통일부 정무직을 맡는 것도 부처가 출범한 뒤 처음이다. 통일부의 전신 통일원까지 범위를 넓히면,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6년 외교관 출신 김석우 차관이 임명된 바 있으며, 이로부터 27년 만이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호 교수는 경남 진주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비서관, 외교부 인권대사 등을 지냈으며, 현 정부 들어서는 통일부 장관 자문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김정은 면전에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을 만큼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로 분류된다.
차관 후보자로 내정된 문승현 주태국대사는 부산 동래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22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외교관으로 임용된 뒤에는 외교부 북미국장, 주체코대사, 주미대사관 정무공사 등을 두루 거친 '정통 외교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비서실 외교비서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 직책에는 2021년 12월 임명돼 약 1년 7개월간 과업을 수행했다.
尹, 통일부 쇄신 착수…교류·협력 → 대북 압박
이번 인선을 두고 윤 대통령이 통일부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통일부의 역할은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치중됐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외부 인사로 꾸린 새로운 수뇌부를 통해 통일부의 무게추를 '대북 압박'으로 옮기려는 구상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래 꾸준히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대북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김영호 교수가 장관 후보자에 낙점된 것도 이러한 국정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외교관 출신 문 대사가 차관직을 수행하게 될 경우 '북한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북 압박 공조를 선도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이 같은 '쇄신 인사'가 당초 통일부의 설립 목적인 '평화 통일'이라는 순기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남과 북은 2019년 이른바 '하노이 노 딜' 이후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은 지난 4월부터 통신선까지 완전히 끊어버린 상태다. 이산가족 상봉, 납북자 송환 등 해결이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되레 대화 가능성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양날의 검' 된 보수색채…청문회 야당 공세 불가피
인사청문회도 넘어야 할 산이다. 김영호 교수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반일 종족주의"라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판사들이 반일 감정에 사로잡혀 일방적으로 일본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뉴라이트 학자 모임을 이끈 이력도 있어, 보수 색채가 짙은 만큼 청문회에서 야당의 공세가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김 교수가 처음부터 '뉴라이트 학자'였던 것은 아니다. 서울대 78학번인 그는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 철학서를 번역·출판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0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훗날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 교수는 구소련 문서들을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뉴라이트 싱크넷 창립에 참여하는 등 달라진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통일부 안팎에선 걱정과 기대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올해 4월 인도협력국을 인권인도실로 격상하는 등 '북한인권' 중심의 대규모 조직 개편을 마친 만큼 신임 장차관이 부임하면, 실국장급을 중심으로 연쇄적 인사이동이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부임 수개월 만에 어떻게 국정감사를 대응할 것인지의 문제"라면서도 "대통령이 통일부에 의지를 갖고 개혁을 시도한다면 보수 정권마다 뒤로 물러나 있던 통일부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장관은 7월 중 여의도로 복귀할 전망이다. 스스로 총선 출마 의지를 거듭 피력해온 것으로 알려진 권 장관의 현 지역구는 서울 용산구다. 강남 3구를 제외하면 서울에서 유일한 여당 진영으로,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고지다. 권 장관은 대통령실 이전, 이태원 참사 등으로 돌아선 용산구 민심을 수습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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