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 백기 든 라면업계, 커지는 추가 인하 목소리
주력 제품 제외 등 품목 선별 인하
실적 개선 전망도 추가 인하 요구 배경 작용
국내 주요 라면업체가 정부의 거듭된 압박으로 제품 가격을 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추가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두 자릿수 안팎으로 이뤄진 가격 인상과 비교해 인하 폭이 절반 수준에 그친데다 올해 상반기 큰 폭의 실적 개선도 예상돼 이번 가격 인하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업계마다 주력 상품을 인상 품목에서 제외해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 27일 신라면의 가격을 4.5% 인하하고, 1000원이었던 소매가를 950원으로 50원 낮춘다고 밝혔다. 농심의 발표 직후 삼양식품도 12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4.7% 내렸다. 전날에는 오뚜기가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 팔도도 11개 제품 가격을 평균 5.1% 내린다고 발표하며 가격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정부가 고물가로 소비자의 장바구니 부담이 가중되자 라면을 콕 집어 물가 잡기에 나섰고, 라면업계가 결국 백기를 들고 가격 인하에 나선 것이다.
줄줄이 가격 인하에 나섰지만 라면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냉랭하다. 지난해 가격 인상 때와 비교해 인하율은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밀·팜유 등 원재룟값이 급등하자 라면업계는 평균 10% 이상 가격을 올리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업계 1위 농심은 주요 제품의 출고 가격을 평균 11.3% 올렸고, 오뚜기와 삼양식품도 주요 제품의 가격을 각각 평균 11.0%, 9.7% 인상했다. 하지만 이번 인하에선 농심이 신라면을 4.5% 내리는 등 인하율이 5% 안팎에 그쳤다.
주력제품을 가격 인하 품목에서 제외한 점도 정부 압박에 업계가 최소한의 성의 표시만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부분이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이번 인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인 ‘진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인하 품목에서 제외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은 해외 매출 비중이 큰 품목이어서 국내와 해외 가격을 맞춰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가격 인하 시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커 쉽게 가격을 인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인하 규모가 기대를 밑돌자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소비자는 업체들의 원재료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감내해 왔다”며 “정부와 사회적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생색내기식 가격 인하가 아닌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가격 인하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추가 인하를 압박했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8일 방송에 출연해 라면값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며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라면업계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추가 인하를 요구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농심의 올해 2분기 예상 매출액은 86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 늘어나고, 영업이익은 341억원으로 702.0%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농심은 지난해 2분기 급등한 밀과 팜유 가격 부담으로 국내 부문이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영업이익이 43억원에 그쳤지만 올해는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 전망치대로 실적이 나올 경우 매출액은 2분기 기준 역대 최대 금액이며, 영업이익은 2020년 2분기(414억원) 이후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분기 10%대 매출과 영업이익 성장을 기록한 오뚜기도 2분기 매출액이 8862억원, 영업이익은 553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2.3%, 16.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삼양식품 역시 매출액이 2845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4% 늘어나고, 영업이익도 298억원으로 9.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 가격 인하가 반영되는 3분기 이후에도 라면업계의 실적 개선 흐름은 이어질 전망이다. 전망치 하향 조정은 불가피하겠지만 고물가로 인해 라면 수요가 견고하기 때문이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7개로 1년 전보다 4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저가 포지션의 라면 수요가 견고한 가운데 원재료의 가격 하향 안정세가 뚜렷해 마진 개선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K-푸드의 인지도 상승과 함께 해외시장의 수요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도 라면업계의 믿을 구석이다. 농심은 코스트코 등 주요 유통 채널로 입점을 확대하며 북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미국 내에서도 가성비 트렌드가 확산하며 라면 소비층이 확대되고 있어 매출 성장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삼양식품도 수출 물량을 담당하는 밀양 신공장이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있어 하반기에도 매출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66.6%까지 높아진 수출 비중을 올해 더욱 끌어올릴 전망이다.
그러나 라면업계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보다 50%가량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평년보다 비싸고, 국제 밀 가격 등락이 수입 가격에 반영될 때까지 3~9개월 시차가 생기는 만큼 여전히 원가가 부담된다는 목소리다. 가격 인상은 비단 밀 가격 하나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인건비, 물류·에너지 비용 등 다른 인상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증권가에서는 농심의 가격 인하 결정으로 올해 영업이익이 기존 추정치보다 2∼3%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가격 인하로 농심의 연간 매출이 180억∼190억원 하향 조정되고, 제분업체의 소맥분 가격 인하 효과로 최소 80억원 절감이 가능하다”며 “올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2~3%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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