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청소년 10명 중 1명 치명적 마약 '펜타닐' 사용"… 진실은?

신은진 기자 2023. 6. 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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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10명 1명이 펜타닐을 사용했다는 여가부의 발표는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청소년의 부적절한 의료용 마약류 경험 증가 사례가 다수 목격돼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 조사 결과를 두고 연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펜타닐은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80배 이상의 중독성과 환각 효과를 지닌 치명적인 마약인데 여성가족부의 '2022년 청소년 매체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담배보다 펜타닐을 많이 이용했다. 중·고등학생의 흡연 경험은 4.2%, 음주 경험은 13.7%인데 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은 10.4%이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발표한 2022년 20세 미만 대상 펜타닐 패치 처방률은 0.01%도 되지 않는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헬스조선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국내 청소년의 펜타닐 이용 현황을 검증해봤다.

◇청소년 펜타닐 처방 암환자 넘치는 '빅5'도 드물어
전문가들은 여가부의 통계에 오류가 있는 게 확실하다고 봤다. 펜타닐 사용이 꼭 필요한 환자가 다수 있는 대형 병원에서조차 처방이 많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 한정우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는 18세 미만에 원칙적으로 처방 자체가 금지돼 있다"며 "통증이 너무 심해 펜타닐이 꼭 필요한 소아청소년 환자에게조차 사실상 불법으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적으로 펜타닐 패치는 암의 뼈전이 등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있을 때 주로 처방하는데 아이들은 전이 자체가 드물고, 전이가 되더라도 치료하면 예후가 좋아 펜타닐 패치까지 사용해야 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다보니 세브란스병원처럼 대형 병원에서도 의학적으로 펜타닐이 필요해 처방받는 환자는 한 달 기준, 초등학생은 10명 중 1~2명, 중·고등학생은 3~4명 정도로, 전체 암 환자의 10%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펜타닐 처방을 받은 청소년은 대부분 암환자다. 헬스조선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지난 4년간(2018년 5월~2021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현황' 자료를 보면, 펜타닐(주사제 외 제형)이 가장 많이 처방된 20대 이하 환자의 질환은 암(악성 신생물)이었다. 연도마다 차이는 있으나, 처방 1, 2위를 차지한 질병은 '골 및 관절연골의 악성 신생물', '림프, 조혈 및 관련 조직의 악성 신생물', '무릎 및 아래다리의 손상'이었다.

식약처의 통계는 한 교수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 중 94.9%가 '병원에서 처방받아 구매했다고 답했다'는 여가부의 발표와는 맞지 않는다.

2022년 기준 20세 미만 인구수는 통계청 KOSIS에 따르면 821만3287명이고, 20세 미만 펜타닐(주사제 제외 모든 제형) 처방 환자 수는 482명이다. 즉, 20세 미만 대상 펜타닐 패치 처방률은 0.0058%에 그친다.

단일 의료기관 사례이긴 하나, 펜타닐 처방 주요 대상인 소아암환자가 많은 병원의 사례임을 고려한다면, 청소년 펜타닐 사용 현황은 식약처의 발표에 가깝다.

여가부의 통계는 처방이 아닌 '경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류가 있다. 청소년 10명 중 1명이 경험했다고 응답할 정도의 약이라면, 일차의료기관인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진료가 이뤄져 약 처방 자체가 많이 이뤄지는 약이어야 하는데 펜타닐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거의 처방이 이뤄지지 않는다.

식약처가 서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보고 기준 펜타닐 처방의 절반 이상은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서 이뤄졌다. 2021년에 펜타닐을 처방받은 환자수는 총 18만3898명(총 처방 148만8325건)인데, 이 중 종합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환자 수가 14만 3090명(122만4477건)을 차지한다. 의원급에서 펜타닐을 처방받은 환자는 6218명(2만6330건)에 불과하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은 "펜타닐 특성상 소아암환자, 극심한 통증이 있는 소아청소년 정형외과 환자들에게 사용하기에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처방이 나올 일이 없다"고 말했다.

여가부 역시 이번 조사결과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여가부 측은 "약물 경험에 대한 문항 중 진통제(펜타닐 패치)의 경우, ‘진통제’라는 표현이 전면에 배치되면서, 응답 청소년 입장에서 일반 진통제 이용경험까지 다수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해석에 유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가부 관계자는 "다음 실태조사 시 이번 조사 결과 등을 고려해 필요한 사항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압수된 펜타닐 패치 /경남경찰청 제공
◇부적절 처방·사용 없다?… 의심 사례 많은 건 사실
하지만 여가부의 통계를 아주 무시하기는 어렵다. 펜타닐 패치 등 의료용 마약류를 오남용 하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건 사실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 현장에선 이미 청소년의 의료용 마약 오남용 사례를 목격하고 있다. 헬스조선 취재 결과, 처방약을 환자에게 조제·전달, 관리하는 단계에 있는 약사들은 청소년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의심사례를 다수 목격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약사는 "드물지만 누가 봐도 펜타닐 패치 사용이 불필요해 보이는 학생이 펜타닐 패치 처방전을 가져와 약을 받아간 사례를 경험하는 약사들이 있다"며, "처방전이 있으니 약을 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부적절한 목적으로 사용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청소년이 펜타닐을 쉽게 처방해준다고 알려진 의료기관 목록을 공유해 처방을 받은 다음, 다른 지역 약국에서 약을 타가는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며, "거짓말 같지만 이러한 경험이나 주변 약국의 펜타닐 처방 문의를 보면 소문이 거짓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약사 B씨는 "방문 약료 상담을 하다보면 암환자인 조부모, 부모에게 처방된 펜타닐 패치를 청소년이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발견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작 환자들은 통증을 최대한 참으려다 보니 불용 의료용 마약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를 청소년 자녀 등이 부적절하게 이용한 것으로 추정돼 가정 내 의약품 관리와 불용 마약류 의약품 수거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느낀다"고 밝혔다.

마약에 대한 청소년의 문제 인식 자체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10대 자녀를 둔 약사 C씨는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면, ADHD가 아님에도 시험기간에 ADHD 약을 사용하는 일이나 여름을 앞두고 나비약으로 불리는 펜터민 계열 약물을 사용하는 일을 친구들끼리 거리낌 없이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찍부터 고카페인 음료 등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은 생각보다 더 약에 대한 경계심이 낮다"며 "마약류인 펜타닐도 한 두 번쯤 호기심에 사용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밝혔다.

◇"꼭 필요할 사람만 쓰도록" 인식·제도 개선 절실
펜타닐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를 꼭 필요한 청소년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함과 동시에 인식 개선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정우 교수는 "일반 진통제로는 통증을 해결할 수 없고, 혈우병으로 인해 수술 등 통증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에겐 마약류 진통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아이들조차 엄격한 처방기준으로 인해 통증을 참아야만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만 의료용 마약류가 사용될 수 있게 시스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임현택 회장은 "의료용 마약류가 의·약사의 손을 떠나면 그다음은 사용자의 몫"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청소년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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