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첫사랑의 갈치 비린내

서지영 2023. 6.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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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은 일제의 식민 산업도시였다. 마산과 시모노세키를 연락선으로 이었고 기차선로를 놓아 유라시아 대륙에까지 연결하였다. 부두 근처에는 각종 공장이 즐비했다.

해방 후에도 마산은 산업도시로 유지되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선친은 산업도시 마산에 이주하여 노동자가 되었다. 마산에 이사를 한 날이 내가 백일 되던 날이라고 들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때의 그 집과 그 동네를 기억한다. 철길 옆 동네였고, 연탄 공장이 있었다. 야적을 한 석탄가루가 날라서 동네 전체가 연탄 공장 같았다. ‘보로쿠’ 벽에다 양철 지붕을 올린 집이었다. 방이 하나였고 방문 앞에 조그만 마루가 있었다. 동네의 집들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면 공터였다. 마당이 아니라 한 것은 옆집과의 경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길과 공터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았다. 밥 때가 되면 집집이 마루 앞에 연탄 화로를 내놓고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생선을 구웠다. 여러 생선이 구워졌을 것인데, 갈치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모두가 가난하여 모두가 연탄 화로에다 갈치를 굽던 동네였다. 

갈치구이는 짜고 비리며 콤콤했다. 한번 사서 두고두고 먹어야 하니 소금을 잔뜩 뿌렸고, 냉장고가 없으니 젓갈 맛을 내었다. 어머니가 나를 안으면 품에서 갈치 비린내가 났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서도 갈치 비린내가 났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에게서 갈치 비린내를 맡는다. 내가 젖을 뗄 무렵에 어머니 품에서 처음 먹은 음식이 갈치였을 것이다. 

똑같은 모양의 집이 일렬로 있던 그 동네에서 골목길 안쪽의 정원이 달린 양옥으로 이사를 한 것이 다섯 살 무렵이었다. 내 유년의 음식 기억은 정원 달린 양옥에서의 것이 대부분이고 갈치구이만 연탄 공장 옆 보루쿠 집의 음식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에 첫사랑이 왔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옆 동네 여자아이였다. 그 동네에 친구가 살았고 그 친구에게 작은 방이 있었으며 전축도 있었다. 친구들이 모여서 팝송을 들었다. 클리프 리차드의 달달한 목소리를 듣도 듣고 또 들었다. 영 원스의 경쾌한 전주와 함께 방문이 활짝 열리고 그 여자아이가 얼굴을 디밀었다. 겨울이라 볼이 빨갰다. 뭐라뭐라 말하고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웃으며 훅 사라졌다.

여자아이는 친구네 옆집에 살았다. 친구는 그 집에 딸이 셋이고, 큰누나가 마산에서 제일 예뻐서 곧 미스코리아에 나갈 것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 둘째 딸을 보게 되었다. 나를 귀여운 동생으로 대해주었다. 좀처럼 셋째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겨울방학이라 거의 매일 친구네에 놀러 갔다.

친구는 어디 가고 나만 친구 방에 있었다. 레코드 재킷에 적힌 가사를 보며 클리프 리차드처럼 되는지 소리를 내어보고 있었다. 그날 그때처럼 방문이 활짝 열리며 옆집 여자아이가 얼굴을 디밀었다. 내게 뭐하고 했고, 그 여자아이가 방으로 들어왔으며, 몇 시간을 함께 있었다. 숨이 막히고 어지러웠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여자아이는 중학교에 가게 되었다. 시내 대형 문구점에 가서 예쁜 일기장을 샀다. 펜도 샀는지, 축하 카드를 썼는지 기억이 없다. 일기장의 예쁜 그림만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한달음에 여자아이 집으로 갔다. 해는 졌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집 앞에서 여자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대문을 열고 나온 여자아이의 오른손에는 젓가락이 쥐어져 있었다. 젓가락을 뒤로 숨겼다가 살포시 웃으며 입에 물었다. 볼이 빨개져 있었다. 갈치 비린내가 났다. 일기장을 받아든 여자아이는 내가 골목길을 벗어날 때까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이후에 첫사랑 여자아이와 영화를 보러 갔었고 빵집에 갔었다. 그러다가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만나지 않게 되었다. 손 한번 잡은 적도 없이 멀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사를 한 이후에 잠시 마산에 있을 때였다. 창동 네거리에서 첫사랑 여자아이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내 곁을 지나쳤다. 서로 눈길이 오갔으나, 서로 알아보았으나, 서로 발길을 멈추지는 않았다. 첫사랑 여자아이는 숙녀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지나간 그 길에 갈치 비린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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