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의 인사이트] 검찰 '이태원 수사' 못 하나, 안 하나
[이충재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 (자료사진) |
ⓒ 연합뉴스 |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가 사실상 중단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검의 압박으로 일선 수사팀 의견이 배척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수사진이 손을 놓고 있다는 겁니다. 검찰 안팎에선 윗선으로 수사가 확대될 경우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검찰 수뇌부가 제동을 걸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내년 총선 전까지 검찰 수사에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태원 참사 전반에 걸친 사실관계와 책임 소재를 밝히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의 특별법이 30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주목됩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사법처리 놓고 대립
검찰 수사 상황을 종합하면 검찰 수뇌부와 서울서부지검 수사팀 간에 대립하는 지점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사법처리 여부입니다. 수사팀은 지난 1월 수사에 착수한 이후 서울경찰청에 대해 네차례 압수수색을 실시해 김 청장의 과실치사와 직무유기 등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구속 기소된 이임재 전 용산서장보다 김 청장에게 더 큰 권한과 책임이 있고, 참사 위험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정황이 뚜렷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수사팀은 이를 근거로 지난 4월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올렸고, 서부지검 지휘부도 같은 의견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대검은 '시간이 많이 지나 구속이 불필요하다'며 보완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사팀은 대검 의견을 수용해 김 청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선회했지만 대검은 이 조차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수사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후 수사는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휴업 상태나 다름 없다는 게 검찰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대검 측은 "신중한 판단을 위해 협의 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수사팀에게는 압력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조계에선 검찰 수뇌부가 김 청장이 기소됐을 경우의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윗선인 윤희근 경찰청장도 형사책임을 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라는 겁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실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이태원 참사 책임이 부각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여권 입장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결국 정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을 피하거나 가급적 늦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 수뇌부가 정치적 이유로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심을 산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정부 책임론을 차단하기 위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해경 123정장의 혐의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광주지검을 압박한 바 있습니다. 2018년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때는 주임검사가 현역 의원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대검 수뇌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검찰의 이태원 참사 수사 부실은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건이 발생하자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검찰이 수사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는 검찰청법상 검사의 수사대상에 속해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역대 대형 참사에선 대부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져 검찰이 경찰을 지휘해 수사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지지부진한 건 검찰 수사뿐이 아닙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참사 실무 책임자들은 보석으로 줄줄이 풀려나고 있습니다. 이충상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의 "당사자 몰주의" 발언처럼 참사를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는 막말도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참사 200일을 훌쩍 넘겼지만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추모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국회 앞에선 20일부터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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