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미술계 성차별 공론화할 ‘공간’ 필요했다”

김대현 2023. 6.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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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에서도 ‘미투’ 활발…본질적 문제 해결되지 않아
2020년 미술계 성폭력·부조리에 대응할 네트워킹 단체 만들어
“예술인도 시스템·집단 통한 문제 해결 가능” 설득
사람과의 연결, 관계 등 주목하면서 자신의 미술 작업에도 변화

편집자주 - 아시아경제는 국내외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을 '파워 K-우먼'으로 선정해 오는 10월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2023 여성리더스포럼’을 통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성별·인종·장애·가난 등 장벽에 굴하지 않고 경계를 부수거나 뛰어넘어 새롭고 보편적인 가치를 창출한 여성 리더들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친 세상에 위로를 주고, 누군가의 롤모델로 자리 잡아 공동체가 나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차별에 위축되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맞서 싸운 사람들을 파워 K-우먼 후보로 뽑아 소개합니다.

"직접 겪은 문제를 '상대가 불편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말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란 믿음이 생겨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서로 묻고 답할 수 있게 됩니다."

2016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미술계_내_성폭력' 등 해시태그를 통해 예술계 전반의 성폭력·성희롱 피해가 폭로됐다.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과 함께 사회 전반의 일그러진 성차별 문화가 공론화됐다. 하지만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가해자는 책임을 지지 않고 여전히 교수로, 작가로 활동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2차 가해'도 잇따랐다.

눈 앞에 보이는 문제를 지나칠 수 없었다. 오연진 루이즈더우먼 대표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왜 미술계가 여성에 대한 문제를 여전히 안일하게 다루는지' 수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럴수록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내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그는 "미술대학에 처음 진입할 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커리어가 성장하거나 의사결정권을 갖는 위치일수록 여성의 성비가 급갑한다.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낮은 보상의 노동에 시달리면서, 마지막엔 남성들이 남는 구조"라며 "'미술계'라는 사회에선 인맥과 평판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이 점이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밝히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혼자 목소리를 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문제의식을 나눈 여성 예술인들이 논의를 구체화했다. 2020년 미술계 성폭력과 부조리에 대응하기 위한 네트워킹 단체 루이즈더우먼을 출범시켰다. 오 대표는 "구조적인 차별을 겪는 개인들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기 쉽다. '문제를 말하고 해결을 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 같은 미술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주변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단체 활동을 꺼리는 성향이 강한 미술계 종사자들을 설득하는 일도 중요했다. 예술인들도 시스템과 집단을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오 대표는 "단체가 권력화되고 개인을 일방적으로 억압할 수 있다는 우려들도 나왔다"며 "하지만 무슨 일이든 조직과 시스템이 있어야 성과 또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시스템이 없으면, 모여 앉아 문제점만 성토하고 끝난다"고 했다. 그가 동료들에게 "시스템이란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루이즈더우먼엔 현재 다양한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230여명의 여성 예술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성장도 함께 지원한다. 작업 및 포트폴리오 리뷰, 팟캐스트·유튜브·뉴스레터 콘텐츠 제작, 온라인 컨퍼런스 이벤트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 최근 구성원 대부분이 프리랜서인 점을 고려해 '종합소득세 신고 방법'을 설명하는 강연도 열었다.

"루이즈더우먼은 10여명의 운영진이 회원 및 회계 관리, 정기 프로그램 운영 홍보 등 업무를 한다. 수시로 진행되는 여러 사업들은 개별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이 주도한다"고 오 대표는 설명했다. 197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까지 루이즈더우먼 구성원의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대학생활을 경험한 1990년대생이 가장 많다. 학업과 직장생활, 개인 미술 작업 등 저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커뮤니티의 역동성을 높여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루이즈더우먼은 여성 예술인들에게 좀 더 안전한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예술계의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오 대표는 루이즈더우먼의 대표인 동시에 미술 작가이고,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로 일하는 회사원이기도 하다. 그는 필름과 사진을 재료로 작업한다. 디지털프린트 대신 어두운 암실에서 이뤄지는 아날로그 작업을 고수한다. 빛을 투영하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하나의 이미지는 다양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루이즈더우먼 활동이 이어지며 개인의 작업 과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루이즈더우먼 이전엔 작업 안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하는 일이 많았다. 루이즈더우먼을 운영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계속 목격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이렇게 연결될 수 있구나' '이렇게 다양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이 점이 제 작업 과정에서도 다른 세계를 열어준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국내 미술계의 대표적인 여성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물었다. 오 대표는 "루이즈더우먼은 기수제로 회원을 모집한다. 1기, 2기 회원들을 모집한 초기엔 부담감이 컸다. 해결할 일은 많았지만, 사람들을 조직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혼란스러웠다"며 "지금은 그런 부담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루이즈더우먼은 4기 회원들을 대상으로 오픈 콜과 성평등 교육을 진행했다.

루이즈더우먼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프로젝트 기획 및 시행을 장려한다. 이를 위해 '협업 역량 강화' 워크숍을 열고 역할 배분 및 성과 설정 방법을 교육했다. 개별 프로젝트팀이 형성되면 관련 활동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한다.

오 대표는 루이즈더우먼에서 추진 예정인 개별 프로젝트로 '지역 여성 예술인 네트워크' 활동을 소개했다. 수도권이 아닌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또는 기획자들이 연결되는 네트워킹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다. 오 대표는 "예술계의 많은 활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권 대학 또는 대학원을 나와 서울에서 전시를 하고 관계를 쌓는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루이즈더우먼 내 여성 지역 예술인들이 주축이 돼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오연진 대표는

1993년생인 오 대표는 서울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출신이다. 2020년 'The Very Eye of Night', 2019년 'Lace' 등 개인전을 열었다. 2018~2020년 '서울사진축제 특별전 Walking. Jumping. Speaking. Writing.' 'Live Forever' 등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다. 루이즈더우먼이 출범한 2020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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