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 이즈 어프레이드’에 아리 에스터 녹였죠” [쿠키인터뷰]

김예슬 2023. 6.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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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연출한 아리 에스터 감독. 싸이더스 

영화 ‘미드소마’·‘유전’으로 호평을 얻은 아리 에스터 감독이 4년 만에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를 선뵌다. 에스터 감독은 가족과 죽음을 소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주인공 보(호아킨 피닉스)의 행적을 따라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에서 기인한 불안과 삐뚤어진 모성, 그가 겪는 여러 가족상을 담아냈다. 보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때때로 기괴하고 기묘하다. 그는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내재했던 이상을 펼쳐내고 이내 고통받는다. 관객에 따라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호러와 스릴러, 블랙 코미디로 모습을 달리한다. 에스터 감독은 179분에 달하는 상영시간 동안 5~6개의 공간을 넘나들며 보의 사고를 비춘다. 

27·28일 이틀 동안 서울 한강로3가와 자양동 모처에서 간담회와 인터뷰로 국내 취재진과 만난 에스터 감독은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가장 나다운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12년 전인 2011년에 이미 ‘보 이즈 어프레이드’ 각본을 완성했다. 당시 제작에 난항을 겪으며 서랍 속에 고이 모셔뒀던 이 영화는 감독이 ‘미드소마’로 성공을 거둔 이후에야 다시 빛을 봤다. 1년간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고를 내놨다. 공들였던 작업물을 세상에 내놓은 지금, 에스터 감독은 “시원섭섭하면서도 공허하다”고 돌아봤다. 

아리 에스터 감독. 싸이더스 

“저 스스로를 녹여낼 수 있어 즐거웠어요. 평소 관심 있던 주제와 두려워하는 것, 흥미로워하는 것들을 깊게 파고들다 보니 보의 세상에 애착이 더 커졌죠. 좋아하는 유머들도 잔뜩 집어넣었고요. 지인들이 이번 영화가 꼭 저 같다고 할 정도예요. 이런 작품을 완성한 것만으로도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 가장 아끼는 작품이에요. 개봉을 앞둬서 그런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잘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에스터 감독은 가족의 여러 단면을 소재로 차용한다. 그의 세계 속 가족은 때때로 폭력의 기원(‘미드소마’)이거나 불안과 공포의 요람(‘유전’)이고, 개인을 옥죄는 굴레(‘보 이즈 어프레이드’)로도 기능한다. 감독은 “가족은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유일한 관계”로 정의했다. 그는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에 반기를 드는 데서 모든 작업을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이라는 친숙한 개념을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낼 때 느껴지는 감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세상에 쉬운 관계란 없어요. 아무리 가족이어도요. 건강한 가정 같아도 그 안에는 기대감·실망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겼거든요. 이런 환경을 이야기를 통해 한 겹씩 풀다 보면 본질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이 제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동일한 같은 관점으로 그려낸 게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심층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코미디극이라 소개했다. 자잘한 유머가 담겨서다. 하지만 극이 다루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극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정서는 보가 느끼는 죄책감이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회피하고 싶은 주제를 똑바로 직시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묘한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보의 어리석은 행동들로 웃을 틈을 마련한다. “보의 인생을 경험하며 긴장감과 재미를 함께 느끼길 바라는” 의도다.

내한 간담회를 갖고 있는 아리 에스터 감독. 싸이더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각 공간마다 유기적인 연결성을 띤다. 가족, 자유, 아들로서 느끼는 감정을 엮어 각각의 이야기와 공간으로 구현했다. 모든 장면이 저마다 다른 의미와 의도를 갖는다. 다만 ‘미드소마’보다는 단선적인 구조다. 에스터 감독은 “처음부터 긍정과 부정 등 두 반응을 의도하고 결말을 설계한 ‘미드소마’와 달리,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면서 “시작점에서 끝나는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건 전진과 후퇴를 고민하는 보가 내리는 선택”이라고 귀띔했다.

영화를 완성한 주요 열쇠는 주인공 보를 연기한 배우 호아킨 피닉스다. 에스터 감독은 피닉스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뒤 그가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재미 없다는 반응을 보일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피닉스는 대본을 읽자마자 곧장 좋다는 반응을 전했다고 한다. 감독은 피닉스와 긴 시간 소통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야기를 너무 많이 나눈 터라 촬영할 때 무심코 지나치는 부분이 생길까 경계했을 정도”다. 에스터 감독은 “피닉스가 생생한 연기를 위해 열정을 쏟았다”면서 “그 덕에 작품에 진정성을 더욱더 담을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거듭 표했다.

‘미드소마’와 ‘유전’으로 호러 장르에서 찬사를 받아온 에스터 감독은 색다른 장르로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차기작을 서부극으로 가닥 잡고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유전’은 호러 장르였던 반면 ‘미드소마’는 호러·심리 스릴러·다크 코미디 등 다양한 성격을 보입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호러에서 확실히 벗어났고요.” 그는 호러 장르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다채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 시작점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다. 통상적인 전개를 변주해 색다른 재미를 전하겠다는 각오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계속 변화하는 영화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적극 몰입해주세요. 그러면 영화가 더욱 새롭게 보일 겁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싸이더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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