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만날 수 없다…차 없는 '170㎞ 직선 도시'가 부를 공포
사우디아라비아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Neom) 시티의 핵심 부분인 '더 라인(The Line)'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자칫 서울 등 한국 수도권보다 시간이 더 걸려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착공한 더라인은 홍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170㎞를 일직선으로 거대한 도시를 짓는 프로젝트다.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의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34㎢에 불과한데, 900만 명의 주민을 수용하면 인구 밀도는 ㎢당 26만5000명에 이른다.
500m 높이는 세계 대부분의 건축물보다 높고, 인구밀도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10배, 필리핀 마닐라의 4배에 이를 전망이다.
도시 면적은 인구가 비슷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2%에 불과하다.
특히, 서울시 면적의 5.6%에 불과한 땅에 서울시 인구와 비슷한 사람이 북적대는 셈이다.
사우디 정부는 재생에너지로 도시를 운영하고, 시민들은 자동차 없이 걷거나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환경친화적 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170㎞에 역이 86개나 필요
오스트리아의 민간 연구기관인 '복잡성 과학 허브(Complexity Science Hub)'의 연구진은 최근 온라인 저널인 'npj 도시 지속가능성(Urban Sustainability)'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더라인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900만 명이 170㎞에 거주한다면, 1㎞ 거리당 5만3000명이 거주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를 1㎞라고 하면,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900만 명 가운데 두 명을 무작위로 골라 거주지점을 연결하면 평균 거리가 53㎞이나 된다.
누구를 만난다면 평균 53㎞를 이동해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걸어가서 만날 수 없는 거리다.
더라인에서 기본적인 요구 사항은 5분 이내에 충족할 수 있다지만, 출퇴근이나 다른 사람 방문 때에는 대중교통, 열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거주자가 5분 이내의 도보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2㎞마다 역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
전체 170㎞ 도시에서 역이 86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열차가 너무 자주 정차를 하면 이동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비효율적이 될 수 있다.
열차가 단선만 있고, 모든 역에 정차한다면 도시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평균적으로 60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구팀은 "2500만 명의 사람들이 평균 50분 미만의 통근을 경험하는 서울 등 한국의 수도권보다 더 긴 통근 시간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직선 대신 원형 도시가 더 나아"
이른바 '더 서클(The Circle)'을 제안한 것이다.
더서클은 더라인을 그대로 원형으로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 안쪽을 비우고 170㎞ 둘레의 원을 그린다면 반지름이 27㎞인 거대한 원이 된다.
연구팀이 말하는 원형 도시는 반지름이 3.3㎞인 원을 콘크리트로 꽉 채운 도시다.
이 정도 반지름이면 더라인의 면적(34㎢)과 비슷한 면적이 된다고 설명했다(3.3㎞ X 3.3㎞ X 3.14).
더서클에서는 인구의 24%가 도보 거리에 살고, 목적지의 대부분도 2㎞ 이내에 위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더라인은 본질에서 선형적으로 확장하는 1차원 도시인 반면, 더서클은 평면으로 확장하는 2차원 도시"라며 "더서클에서는 2배 더 멀리 여행하면 4배 더 많은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서클도 경우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연구팀이 제시한 더서클은 지상에 높이 솟아 있을 뿐, 도시의 맨 윗부분과 맨 바깥 부분을 제외하면 개미집과 다를 바 없는 구조다.
연구팀도 "이러한 규모로 더서클을 구축할 경우 주로 높은 건물에 의해 발생하는 빛과 환기 문제로 인해 더라인을 구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더라인 자체가 비현실적
무엇보다 사우디에서 인구 900만 명의 도시를 새로 만들어 수용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향후 20년 동안 사우디에서 인구가 900만 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모두를 더라인에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수도 리야드의 인구가 770만 명인데, 그보다 더 많은 인구를 불러 모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민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도시는 크게 지었는데, 사람이 채워지지 않고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높이 500m 고층 건물로 이뤄진 수직 도시는 엘리베이터 등 에너지 소비가 많다는 문제도 있다.
초고층 건물을 짓는 데는 많은 재료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인공조명에도 크게 의존해야 한다.
고층 건물은 더 강한 바람과 태양열, 극한 기온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도 많다.
환경문제 외에도 더라인은 취약성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형의 운송 시스템은 고장에 가장 취약한 형태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더라인은 야심 찬 프로젝트이지만, 더 전통적인 도시 형태를 취함으로써 인구밀도를 낮추고, 보행성과 연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인류가 5만 개의 도시를 갖고 있는데, 그 도시들이 모두 둥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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