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도 만날 수 없다…차 없는 '170㎞ 직선 도시'가 부를 공포

강찬수 2023. 6.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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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하는 홍해 거대 도시 네옴(NEOM)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더 라인(The Line). 높이 500m, 폭 200m, 길이 170km의 직선 구조물이다.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Neom) 시티의 핵심 부분인 '더 라인(The Line)'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자칫 서울 등 한국 수도권보다 시간이 더 걸려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착공한 더라인은 홍해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170㎞를 일직선으로 거대한 도시를 짓는 프로젝트다.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의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34㎢에 불과한데, 900만 명의 주민을 수용하면 인구 밀도는 ㎢당 26만5000명에 이른다.

500m 높이는 세계 대부분의 건축물보다 높고, 인구밀도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10배, 필리핀 마닐라의 4배에 이를 전망이다.
도시 면적은 인구가 비슷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2%에 불과하다.

특히, 서울시 면적의 5.6%에 불과한 땅에 서울시 인구와 비슷한 사람이 북적대는 셈이다.

사우디 정부는 재생에너지로 도시를 운영하고, 시민들은 자동차 없이 걷거나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환경친화적 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170㎞에 역이 86개나 필요


사우디 정부가 공개한 ‘더 라인’ 조감도. AFP
하지만, 더라인이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민간 연구기관인 '복잡성 과학 허브(Complexity Science Hub)'의 연구진은 최근 온라인 저널인 'npj 도시 지속가능성(Urban Sustainability)'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더라인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을 짚었다.

우선 900만 명이 170㎞에 거주한다면, 1㎞ 거리당 5만3000명이 거주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를 1㎞라고 하면,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900만 명 가운데 두 명을 무작위로 골라 거주지점을 연결하면 평균 거리가 53㎞이나 된다.
누구를 만난다면 평균 53㎞를 이동해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걸어가서 만날 수 없는 거리다.

더라인에서 기본적인 요구 사항은 5분 이내에 충족할 수 있다지만, 출퇴근이나 다른 사람 방문 때에는 대중교통, 열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든 거주자가 5분 이내의 도보로 열차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2㎞마다 역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
전체 170㎞ 도시에서 역이 86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열차가 너무 자주 정차를 하면 이동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비효율적이 될 수 있다.

열차가 단선만 있고, 모든 역에 정차한다면 도시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평균적으로 60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구팀은 "2500만 명의 사람들이 평균 50분 미만의 통근을 경험하는 서울 등 한국의 수도권보다 더 긴 통근 시간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직선 대신 원형 도시가 더 나아"


네옴시티에 건설되는 해상 첨단산업단지 ‘옥사곤’. 사진 네옴
이에 따라 연구팀은 더라인 대신 도시를 원형으로 건설한다면 접근성이 훨씬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더 서클(The Circle)'을 제안한 것이다.

더서클은 더라인을 그대로 원형으로 만드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 안쪽을 비우고 170㎞ 둘레의 원을 그린다면 반지름이 27㎞인 거대한 원이 된다.

연구팀이 말하는 원형 도시는 반지름이 3.3㎞인 원을 콘크리트로 꽉 채운 도시다.
이 정도 반지름이면 더라인의 면적(34㎢)과 비슷한 면적이 된다고 설명했다(3.3㎞ X 3.3㎞ X 3.14).

더서클에서는 인구의 24%가 도보 거리에 살고, 목적지의 대부분도 2㎞ 이내에 위치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더라인은 본질에서 선형적으로 확장하는 1차원 도시인 반면, 더서클은 평면으로 확장하는 2차원 도시"라며 "더서클에서는 2배 더 멀리 여행하면 4배 더 많은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서클도 경우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연구팀이 제시한 더서클은 지상에 높이 솟아 있을 뿐, 도시의 맨 윗부분과 맨 바깥 부분을 제외하면 개미집과 다를 바 없는 구조다.

연구팀도 "이러한 규모로 더서클을 구축할 경우 주로 높은 건물에 의해 발생하는 빛과 환기 문제로 인해 더라인을 구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워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더라인 자체가 비현실적


네옴시티의 더라인 인구(900만 명)와 사우디 내 다른 도시들 인구 비교. [자료: npj Urban Sustainability, 2023]
사실 연구팀이 말하려는 것은 더라인의 비효율성이다.

무엇보다 사우디에서 인구 900만 명의 도시를 새로 만들어 수용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향후 20년 동안 사우디에서 인구가 900만 명 정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모두를 더라인에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수도 리야드의 인구가 770만 명인데, 그보다 더 많은 인구를 불러 모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이민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도시는 크게 지었는데, 사람이 채워지지 않고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높이 500m 고층 건물로 이뤄진 수직 도시는 엘리베이터 등 에너지 소비가 많다는 문제도 있다.
초고층 건물을 짓는 데는 많은 재료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인공조명에도 크게 의존해야 한다.

고층 건물은 더 강한 바람과 태양열, 극한 기온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도 많다.

환경문제 외에도 더라인은 취약성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선형의 운송 시스템은 고장에 가장 취약한 형태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더라인은 야심 찬 프로젝트이지만, 더 전통적인 도시 형태를 취함으로써 인구밀도를 낮추고, 보행성과 연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인류가 5만 개의 도시를 갖고 있는데, 그 도시들이 모두 둥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네옴시티 더라인의 내부 조감도. AFP=연합뉴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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