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 아이 걱정돼 자수 못 해" 냉장고 시신 친모의 편지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살아갔으면 좋았을텐데, 생활고와 산후우울증에 방황하던 제게 찾아와 짧은 생을 살다 간 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2018년과 2019년 아이 둘을 낳자마자 살해한 뒤 냉장고에 보관한 혐의를 받는 ‘수원 영아살해 사건’의 친모 고모(35)씨가 28일 중앙일보에 편지를 보냈다. 고씨는 이날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변호인을 통해 “저는 수원 영아 사건의 친모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를 전했다.
고씨는 “(아기들이) 매일 매일 생각났다.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만 입학하면 자수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입학하고 보니 엄마 손길이 아직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수해야지 늘 생각했다”고 적었다. 고씨는 이어 “남은 아이들이 갑작스레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 얼마나 놀랄까, 씻는 법, 밥하는 법, 계란프라이 하는 법, 빨래 접는 법 등을 알려주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첫 조사 때 거짓말을 하고 이런 것들을 알려줄 시간을 벌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러번 자수하고 싶었지만, 남은 세 아이가 아직 어리고 걱정돼 그러지 못했다”며 “오랫동안 방치해 먼저 간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에 가슴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는데, 과도한 신상털기가 시작됐다. 아이들은 제발 보호해달라”고 한 고씨는 “죄는 잘못한 만큼 달게 받겠다. 평생 먼저 간 아이들에게 속죄하며 살겠다”며 편지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고씨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경기남부경찰청은 고씨를 살인 또는 영아살해 혐의로 30일 수원지검에 송치할 방침이다. 검찰 송치 전 고씨는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이 진행하는 집중 조사에 동의해 조만간 범행 당시와 현재 심리를 분석하는 조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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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씨로부터 “과거 한 차례 낙태” 진술 확보
경찰은 지난 27일 고씨가 과거 한 차례 낙태 수술을 받았고, 이때 비용 부담을 크게 느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고씨는 “넷째 아기를 출산하기 1년 전에 수원시 팔달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가 250만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며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남편에게도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겼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혐의는 대부분 인정했으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남편 이모(41)씨는 여전히 고씨의 출산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 부부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의 어린이집 원비 500만원 이상을 납부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2018년과 2019년 살해한 아이들을 낳을 때 산부인과 입·퇴원 비용은 미리 아껴둔 보건복지부의 임신출산진료비 지원 바우처(임신 1회당 100만원)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씨의 변호인인 유형빈 변호사는 “영아 살해 사건은 보통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극도의 흥분 상태, 수치심, 압박감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고씨가 남편에게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오면 유기죄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결국 해선 안 될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사정을 설명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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