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 몰린 푸틴 핵 쓴다면…'바그너 반란' 후폭풍, 한국도 초긴장

정진우, 박현주, 김한솔 2023. 6.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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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그룹 소속 용병들이 남부군관부 사령부를 점령한 직후인 지난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주민들이 모여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3일 시작된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은 하루 만에 종결됐지만 그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난 23년간 이어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의 ‘철권 통치’는 시험대에 올랐고, 우크라이나 전쟁 구도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역시 무장 반란이 몰고 올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장의 한·러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중·장기적 차원에서 그 불똥은 한국의 대러 정책과 우크라이나 지원, 나아가 북핵 문제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압박 딜레마


한국이 마주할 첫 과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한 딜레마 상황이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은 의도치 않게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서방은 기세를 몰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미국 주도로 무기 지원 행렬이 이어질 경우 한국 역시 동참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그너 반란을 계기로 푸틴의 권력 기반이 생각보다 더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오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푸틴을 더 몰아붙이면 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전쟁의 향배가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 역시 무기 지원 등의 문제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G7 정상회의 계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줄곧 “전쟁 중인 국가에는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포탄·탄약 등 상대적으로 비축량이 넉넉한 무기를 지원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이 이어졌고, 결국 폴란드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지원에 나섰다.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원칙을 위배한 채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에 신중한 건 한·러 관계를 의식한 측면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인도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적 행위로 간주하겠다”(마리아 자카로바 외무부 대변인 성명)는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곧 한·러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만약 서방의 무기 지원 압력이 강해질 경우 러시아로부터 무기 지원에 하지 말라는 반대 압박을 동시에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핵무기 위협, 현실화하나


바그너 그룹의 반란에 이어 우크라이나 대반격으로 전황이 기울 경우 푸틴이 벼랑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푸틴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이후 줄곧 핵무기를 과시하고 핵전쟁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지난해 12월 인권이사회 연례회의에선 “러시아는 핵무기를 방어 수단이자 잠재적 반격 수단으로 간주한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와 동맹을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 “푸틴의 전술핵 사용 위협은 진짜”라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위협에 이어 실질적인 핵 카드를 꺼낼 경우 북한의 핵 무력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가 동북아 핵 리스크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은 2019년 북러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잔을 들고 건배하는 모습. 타스통신=연합뉴스

러시아발 핵 리스크 고조는 북핵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다. 러시아가 선두에서 핵 위협을 고조시키며 집중포화를 맞거나 만에 하나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북한은 이를 방패막이 삼아 핵실험 고도화는 물론 실제 핵 사용과 관련한 위협 수위를 높일 명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용병 기업이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러시아의 핵심부를 휘젓고 다닌 이번 사태를 놓고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핵무기가 바그너 그룹 등 제3세력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현지 민간인과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휘하 용병들이 벨라루스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재차 세력을 형성할 경우에도 핵 리스크는 가중된다.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에 배치된 러시아의 핵무기를 목표로 재차 무장 반란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벨라루스로 지난 24일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에 이전되고 있는 핵무기를 손에 넣을 경우) 세계는 파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엄구호 한양대 국제대학원 러시아학과 교수는 “(바그너 무장반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바그너 그룹에 핵 버튼이 넘어가는 상황을 제일 우려했던 것 같다”며 “‘핵보유국의 정치적 불안정은 최고의 국제적 위협’이라는 말처럼 미국 역시 핵 문제를 비롯한 비상사태까지 감안해 상당히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 차원의 한·러 관계 재설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 2월 이후 전쟁이 1년 4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쟁 장기화와 별개로 정부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러 관계의 전면적 재설계를 위한 사전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의 모습. AP=연합뉴스
이 때문에 바그너 반란을 계기로 장기적 차원의 한·러 관계를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어떤 형태로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고 불확실성이 제거될 경우 한국 입장에선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이 불가피하다.

우윤근 전 주러대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양자 간의 외교 공간을 재설계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가 우크라 재건 문제에 관심을 쏟는 것처럼 러시아에 대해서도 스마트 시티 구축 등 전쟁 이후의 협력 기제를 마련해야 하는 등 장기적 과제를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통일 등 한국의 대북 정책에서도 필수적인 협력 파트너로 꼽힌다.

위성락 전 주러 대사는 “이번 사태에서 정부는 서구의 그 어느 나라보다 중립적 입장을 취했고, 이런 모습은 ‘가치외교’의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러 관계의 측면에서는 일부 긍정적 요소도 엿보인다”며 “한국의 대표적 외교 과제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라도 러시아와 협력·소통할 외교 공간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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