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배터리 소재 70%·항생제 원료 90% 공급… “탈중국 불가”

전웅빈 2023. 6. 2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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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전투기·이지스 구축함 등
미군, 中 희토류 공급망에 의존
美·EU의 대중 수출도 막대한 규모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광물인 리튬의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한 가운데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리튬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 업체 비야디(BYD)의 전기차가 전시된 모습. AP연합뉴스


“중국에 공급업체 수천 곳을 두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 위험을 줄일 수는 있지만, 관계를 완전히 끊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미국 최대 항공우주·방산 업체 중 하나인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 그레그 헤이즈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국내나 다른 우호 국가에서 해당 역량을 다시 구축하는 데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은 미국에 재앙’이라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중국과의 관계를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de-risking·탈위험화)으로 규정하고 나선 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분야 광물 공급망 장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월 펠릭스 치세케디 콩고민주공화국(DR 콩고)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지난 18일에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콩고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17만명분의 쌀을 지원했다. 콩고는 지난 5월 초 폭우로 44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10만8000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콩고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막대한 광물 때문이다. 콩고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필수 광물인 코발트 자원의 전 세계 생산량 41%를 차지한다. 그런데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콩고 광산 업체를 직접 소유하거나 지분 투자하는 방식으로 산업 전체를 장악했다. 콩고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은 핵심 광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장기 전략에 따라 5개 대륙 광산 회사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서 코발트 정제품의 73%, 음극재 77%, 양극재 92%, 배터리 셀 66%를 장악하게 됐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희토류 세계 매장량(산화물 기준)은 1억2000만t인데 중국이 가장 많은 4400만t(37%)을 보유하고 있다. 희토류 원소는 배터리, 항공 전자 공학, 에너지 기계와 같은 첨단 기술에 사용된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F-35 전투기에는 417㎏(920파운드), 이지스 구축함에는 2358㎏(5200파운드)의 희토류가 필요하다”며 “잠수함 소나(수중 음파탐지기)부터 항공기의 디스크 드라이브 모터에 이르기까지 미군은 전적으로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성향의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퍼스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일반 항생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의 전 세계 공급량 90%를 통제하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 지급으로 태양광 패널 가격을 떨어뜨려 경쟁국의 진입 장벽을 높였고, 그에 따라 태양광 패널 제조 단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95%까지 올라섰다.

캐나다 광물업체 시그마리튬의 광산 기술자가 지난달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리튬 채굴 작업을 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아메리칸 컴퍼스는 “중국은 리튬의 60%를 정제하고, 에너지 전환 및 국방 제조에 필수적인 기타 광물의 생산도 주도하고 있다”며 “글로벌 공급망과 생산 네트워크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부문을 장악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중, 미·EU의 최대 교역국

이에 더해 중국은 미국의 최대 수입국이다. 24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중국에서 들여온 상품 규모는 5367억 달러(약 701조원)에 달한다. 수입 규모도 2020년 4237억 달러, 2021년 5049억 달러 등으로 증가했다.

분야별로 전자제품(1829억 달러), 기계장비(594억 달러), 섬유·의류(414억 달러), 신발(138억 달러) 등은 중국 의존도가 다른 교역국에 비교해 가장 컸다. 화학 관련 제품(584억·2위), 광물·금속(382억 달러·2위) 등도 중국에서 들여온 양이 많았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공급망 리쇼어링 전략을 펼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중 수입이 10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미국 상품 공급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해 EU 상품 수출의 세 번째로 큰 파트너(9.0%)이자 EU 상품 수입의 최대 파트너(20.8%)였다. 특히 수입은 2위 미국(11.9%)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202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EU의 대중국 수입은 39.0% 증가하며 의존도가 더욱 커졌다.

중국 경제 상황이 세계 공급망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지난 1월 ‘글로벌 공급망 압력지수(GSCPI)의 중국 영향’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중국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이 발생하자 지수 회복 속도가 늦춰졌다”며 “중국의 공급 여건 악화가 주변 무역 파트너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국의 대중 교역 의존도가 워낙 높아 중국이 흔들리면 그 영향이 즉각적으로 퍼진다는 의미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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