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택 (3) 며느리 기도와 아들 호소에 “오냐 나도 예수 믿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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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1920년 경남 진주의 갑부 집안 셋째 딸로 출생해 진주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셨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야말로 부엌 물에 손 한 번 담그지 않고 성장하신 어머니가 가난한 남편을 만나 일생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는 경남 인근 사찰의 주요 시주자이실 만큼 불심이 깊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아내 황영희 박사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실 때만 해도 "너희는 믿어라, 나는 안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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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머니
아버지 만나 일생 고생 많이 하시다
돌아가시기 10년 전에 예수님 영접
나의 어머니는 1920년 경남 진주의 갑부 집안 셋째 딸로 출생해 진주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이셨다. 외할아버지는 양조장과 정미소를 경영하신 지방 사업가였다. 어머니는 서양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면서도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시며 단아한 인품을 다지신 고전적 여성이기도 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야말로 부엌 물에 손 한 번 담그지 않고 성장하신 어머니가 가난한 남편을 만나 일생 고생을 많이 하셨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일가친척들에게 당대 최고의 엘리트인 일본 도쿄대 출신과 결혼을 한다고 부러움을 샀고, 남편이 만주와 몽골에서 식품 검열관 겸 군수물자 책임자로 일할 때만 해도 어머니는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독립군을 도운 게 탄로 나 체포 직전 몽골을 탈출하면서 귀국하게 되자 말 그대로 맨손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더욱이 6·25전쟁 와중에 피난민을 돕다 아버지가 군청에서 실직하자 열한 살이던 내가 어머니의 가사를 적극적으로 돕게 됐다. 아버지는 마을을 돌며 집마다 가축의 출산을 돌봐 주시며 얼마간의 수고비를 받아 생활을 연명해야 했지만, 수고의 대가가 현금이 아니라 주로 곡식을 받았기에 전쟁 통에 모두 생활이 빈한해서 어려움이 컸다.
아버지는 1985년 1월 69세를 일기로 홀연히 이웃 마을을 다니러 가시듯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를 기리는 ‘가신 님 향산공께 드리는 시’를 지으셨다. 맨 앞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탁하고 험한 세상 맑게 사시다/ 어느새 반세기가 꿈만 같구려/ 비단같이 고운 마음 대쪽 같은 곧은 성품/ 호탕한 그 웃음소리 언제 다시 들어 보리/ 오늘도 그 이름 불러 봅니다.”
어머니는 2012년 1월 9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불효자이나 독실한 불교 신자이시던 어머님께 예수님을 전도해 천국에 가시도록 안내해 드린 것은 효도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경남 인근 사찰의 주요 시주자이실 만큼 불심이 깊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아내 황영희 박사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실 때만 해도 “너희는 믿어라, 나는 안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0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셨으니 복음의 역사는 참으로 위대하다.
당시 어머니께 예수님을 전하려는 아내의 기도와 헌신은 실로 눈물겨운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 문을 열어드리긴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어머니 방을 찾았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어머니에게 불효했던 지난날을 진심으로 사죄드렸다. 내 눈에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못난 아들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셨습니다. 가정의 신앙문제로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만 어머님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저렇게 애쓰는 며느리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들의 눈물 호소를 들은 어머니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시더니 이윽고 입을 여셨다. “오늘 밤 네가 이렇게 어미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니 내 마음도 찢어진다. 오냐 알았다. 나도 예수 믿으마.”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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