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 중고 에어컨 후원… “이중직은 선교·목회의 수단”
누군가의 땀을 식히기 위해 자신은 땀을 흘린다. 김웅기(54) 인천본향감리교회 목사 이야기다. 그는 목회자이자 무더운 여름을 책임지는 에어컨을 설치하는 기사다.
비가 내렸던 지난 21일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에서 트럭을 타고 온 김 목사를 만났다. 화물칸에 가득 찬 공구와 에어컨 부품이 그의 일을 대신 소개하는 듯했다. 기자는 김 목사와 이민호(가명·53) 팀장과 함께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오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두 군데였다.
첫 번째 목적지인 인천 서구 은강교회(유성열 목사)에 도착했다. 에어컨을 교체할 곳은 2층 남선교회실과 3층 성가대실이었다.
에어컨 설치는 일반 가전제품과 달리 프레온가스를 다루고 전문기계를 이용하며 용접하는 등 전문 기술을 필요로 한다. 관련 기술이 없는 기자는 프레온가스통이나 공구를 옮기는 등 허드렛일을 도왔다. 20㎏을 웃도는 물품은 몸을 휘청이게 할 정도였다. 현장의 김 목사는 능숙하게 설치 작업을 이어갔다. 그가 목회자란 사실을 잠시 잊게 할 정도였다.
에어컨이 필요하단 말은 곧 에어컨이 없단 이야기다. 김 목사가 입은 회색 티셔츠는 어느새 땀으로 흥건해지고 변색됐다. 그는 “그래도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은 시원한 편”이라며 “사람들이 에어컨을 여름에 많이 설치하다 보니 30도 넘는 밖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기절할 뻔한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김 목사가 에어컨 설치를 시작한 것은 어느 교회에서 중고 에어컨을 후원받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2015년 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20여명의 성도를 섬기고 있는데 개척 초기엔 교회 월세가 밀릴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에어컨이 생겼지만 설치기사를 부르는 비용이 큰 부담이었기에 결국 김 목사가 직접 에어컨을 분해해 공부하고 설치했다. 이후 주변 교회의 에어컨 설치를 도와주다가 내친 김에 자격증까지 따고 설치 기사가 됐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에어컨 교체가 끝났다. 낡은 에어컨은 버려지는 게 아니었다. 선교지로 향한다. 김 목사는 캄보디아나 필리핀 등에서 에어컨 선교도 펼치고 있다. 그는 “현지 성도에게 에어컨 설치 기술을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다음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웨일즈국제학교(이사장 성백 목사). 기독교 대안학교인 이곳까지는 인천에서 차로 약 2시간이 걸렸다. 김 목사는 교회를 위한 에어컨 설치라면 부산이든 제주도든 달려간다고 했다.
학교는 에어컨 점검을 요청했다. 김 목사와 함께 어떤 곳이 문제인지 4~5곳을 둘러봤다. 대공사가 필요한 규모였다. 준비된 공구만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해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인천으로 돌아갔다.
차 안에서 김 목사는 이중직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레 꺼냈다. 개척교회를 홀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이중직이 필수였다. 그러나 이중직이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와 목회의 새로운 수단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는 “사명감으로 이중직에 뛰어들면 내 삶의 현장 모든 순간이 목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 목사는 5년 전 의정부의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를 회상했다. 하반신이 마비된 형을 위해 동생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당시 동생은 김 목사에게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유년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교인들로부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은 김 목사는 무료로 에어컨을 설치해줬다. 그리고 그에게 교회에 다시 나가볼 것을 권유했다. 그는 “지금은 연락이 끊겨 교회에 다니는지 모르지만 주님의 말씀을 다시 전할 수 있었단 사실이 감사했다”고 전했다.
김 목사의 에어컨 사역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는 “현재 냉난방선교회를 이끌며 함께할 동역자를 찾는 중”이라며 “목회자들에게 에어컨 설치 기술을 가르쳐 사역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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