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야당의 ‘후쿠시마 오염수 외교’ 유감
민주당은 지난 2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관해 국제적 연대를 촉구하는 ‘협조 서한’을 태평양 도서국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협조 서한에는 오염수 방류 논란과 관련해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잠정 조치를 청구하고,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 서한은 의원총회 직후 태평양 도서국 포럼에 소속된 호주·피지·마셜제도 등 18개국과 태평양 포럼 사무국에 발송됐다. 그런데 이런 야당의 대외적 행보가 지금 시점에 과연 적절한가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국민이 적지 않다. 야당이 국내정치 과정을 통해 다뤄야 할 정치·사회적 이견을 외교와 국제관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국익을 위해 밤낮으로 전방위 총력 ‘외교 전쟁’을 펼쳐야 하는 시점에 일선 외교관들을 난처하고 허탈한 상황에 빠뜨렸다는 말이 들린다. 급기야 지난 25일 외교부는 야당의 서한 발송과 관련해 유감을 표명하는 의견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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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태평양 도서국에 서한
일본 방류에 연대 필요성 제기
외교 관행 벗어난 행위 자제를
」
일반 국제법상 국가원수는 ‘대외적 대표권’과 함께 외교 권한을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1항과 4항, 제73조 등에서 이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한 국가적 입장 정립과 대외적 천명, 국제재판소 제소 여부 등은 성질상 대통령의 외교권(대외적 행정권)에 속한다. 외교부는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의 외교권 행사를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야당의 행동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외교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 외교 행위의 단일성이란 국제사회의 일반적 관행이나 통용 원칙에도 야당의 행위는 반하는 측면이 있다. 국익과 관련된 외교 문제에 대해 행정부·국회·법원·지방정부 등 국가기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해외에서 공공연히 내는 것은 외교 정책의 통일성과 신뢰성을 해칠 수 있다. 국가의 협상력 약화 등 부정적 영향도 있다.
그렇기에 대다수 국가의 국회나 정당은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국내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거나 비판하는 선에서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헌법상 인정되는 국정조사나 국정감사를 통해 대통령의 외교권 행사를 일정 부분 견제할 수도 있다. 이는 모두 대내적 차원의 조치다.
하지만 일국의 야당이 다른 나라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그 국가의 외교 사안(주권사항)에 영향을 끼치려고 공세적 행동에 나서는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자칫하면 주권 개입이나 침해로 비칠 수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민주당이 국정운영의 책임을 분담하고 수권정당의 면모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와 관련해 태평양 도서국들과 외교적 접촉이나 정치적 선전전을 시도하는 것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도 필요하다. 지금 야당의 행위를 묵인·방관하고 넘어가면, 야당이 나중에 집권당이 됐을 때 지금의 여당이 똑같은 행위를 해도 문제 삼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외교적 혼선과 국론 분열, 국격 훼손이 또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외교 정책의 영역에서 ‘내로남불’은 피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민주화와 인권을 내세워 온 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중국 정부 초청 형식으로 티베트를 방문했을 때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다. 티베트 인권 침해 실상에는 눈 감는 듯한 언행으로 티베트 망명 정부의 반발을 샀고, 문제가 되자 불교계에 사과하는 일도 개운치 않다.
물론 야당이라고 해서 외교적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익을 고려해 절제하면서 상식과 통념에 부합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민주당의 태평양 도서국 접촉과 연대 추진은 외교 정책의 신뢰성과 국제관행 등에 비춰볼 때 상식과 통상적 범위를 넘어선 측면이 강하다. 국익에 역행할 우려도 있다.
이런 행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식인 사회와 건강한 여론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당리당략이나 정파적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버리고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 정치권이 상식에 충실하면서 외교 문제의 자율적 규제를 모색하는 성숙함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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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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