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의 속풀이처방] 마녀사냥은 사라졌나

2023. 6. 29.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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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마녀사냥’ 하면 가톨릭이 연상된다. 가톨릭교회의 역사 속 오점 중 하나인 마녀사냥.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려 10만 명 이상의 애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무지한 자들이 집단신경증을 유발했고, 심리적 균형을 잃고 괴물이 된 인간들이 종교의 명분으로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이다.

요즘에는 자신들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안 하는 문명인인 양 중세 가톨릭의 마녀사냥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현대의 사람들은 중세 때와 달리 이성적일까. 종교적 차원만 벗어났을 뿐, 현재도 마녀사냥은 여전하다. 마녀사냥을 하는 기본 원리도 동일하다. 오히려 더 잔인해지고 대량화되었다.

「 중세 때의 비이성적 행동 여전
자기 편만 챙기는 분열적 사고
대중 분노 달래려 희생양 양산
‘생각’을 잃은 사람들 파고들어

14세기 유럽 중세 때 극성을 부린 마녀사냥을 그린 삽화. [사진 위키피디아]

마녀사냥은 신자들이 교회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중세 가톨릭 권력자들의 사욕에서 시작되었다. 점을 보는 사람, 꿈을 꾼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했는데, 이것은 오늘날 자신들의 이념과 다른 사람들을 처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에서 시작된 매카시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서 고문하고 죽였고, 공산국가였던 캄보디아는 폴 포트 정권하에서 수많은 지식인을 반동 부르주아로 몰아 학살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대한 집착과 획일주의적 사고방식이 분열증적이고 광적인 심리로 마녀사냥을 행한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정적 제거이다. 중세 유럽의 권력자들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마녀 누명을 씌우고 재산을 강탈했는데, 이런 양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합법적인 불법수사로 정적들의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일은 어느 사회에서나 자행된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시선 돌리기다. 중세 권력자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달래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마녀사냥을 감행했다. 이는 현재에도 여전히 악용된다. 그래서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가 드러날 때면 어김없이 연예인들의 사건·사고 소식이 지면을 뒤덮는다. 희생양을 만드는 것이다.

네 번째 공통점은 몰아대기이다. 중세의 마녀 판별은 말도 안 되는 심문으로 이루어졌다. 소위 성스러운 물에 대상자를 빠뜨려서 익사하면 정상이고, 물 위로 나오면 마녀로 간주했다. 또한 뜨거운 물에 물건을 집어넣고 꺼내게 해서 화상을 입으면 마녀, 입지 않으면 정상으로 보았다고 하니 이런 심문에서 벗어날 사람이 있었겠는가. 자백할 때까지 먼지가 나게 털어대는 것이 마녀사냥꾼들의 방법이었다. 이 역시 지금도 여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녀사냥꾼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아이히만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다.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을 학살한 아이히만은 깡패나 살인자의 모습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

평범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평범함이란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고 산다는 의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자체를 피곤해한다. 그런데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뇌의 기능은 퇴화하고, 파충류나 포유류의 뇌만 커져서 인간답지 않은 비이성적 행동을 하게 만든다. 또한 일상의 지루함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은 이를 해소해줄 대상을 간절히 바란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비등점을 넘어설 때 운동경기를 보다가 상대팀 응원단과 싸우거나 집단적 시위를 할 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분노를 쏟아부을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자존감이 낮기에 나서서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누군가 큰소리로 부추기면 광포한 짐승처럼 사람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 집단 안에서 자신이 대단한 인물인 듯한 착각에 빠져 가학적 쾌락을 만끽한다.

마녀사냥은 두 가지 비참한 결말을 초래한다. 먼저 개인의 정서 수준을 하락시킨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가짜뉴스에 더 몰입하며, 자기 분노를 정당화하려는 게임에 중독된다. 생각하려 하지 않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근거 없는 전사의식을 불태운다. 이들을 농락하는 자들이 사이비 종교인들인데, 농락당한 자들은 그들을 훌륭하다고 하며 추종자가 되는 추태를 보인다.

두 번째로 사회적 퇴행 현상을 보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빅 아이(BIG EYE)’를 의식해 입을 다물고 좀비처럼 살아가기에 사회적 생동감이 낮아지며, 국가 전체가 침몰하는 배처럼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처럼 마녀사냥은 개인이건 공동체건 나락으로 빠뜨리기에 절대로 행해져서는 안 되는, 사라져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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