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지금 평양에선 무슨 일이? ‘외교의 시간’ 다가오나

2023. 6. 2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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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운이 좋은 지도자다. 그는 셋째 아들 출신임에도 장자를 선호하는 가부장 사회인 북한에서 왕좌에 올랐다. 2012년 취임 첫 공개 연설에서 “더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그해 여름 두 달 동안 북한 전역에 폭우가 이어졌다. 사상자 900여 명과 이재민 29만8000여 명이 발생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홍수가 나지 않았어도 식량 문제 해결이 난망한 상황이었는데, 재해 원인을 자연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 북, 3년간 경제수장 네 번 교체
국경 개방, 인적 교류 징후 보여
7·27 열병식이 신호탄 될 수도
북, 야적장 치운 중국에 불만도

북한이 지난 23일 올림픽의 날을 맞아 평양에서 달리기 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연합뉴스]

원산 갈마 휴양지와 평양종합병원도 그렇다. 김 위원장은 원산비행장 바로 옆 바닷가에 대규모 휴양지 건설을 하면 주민들이 좋은 시설에서 휴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완공 시한을 세 차례나 연기한 끝에 2020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북한은 태양절)에 맞추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아직 준공하지 못했다. 2020년 3월 17일 열린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올해 계획했던 많은 건설 사업을 뒤로 미루겠다”며 그해 10월 10일 즉 노동당 창건 75주년에 완공하라고 했다. 이 역시 3년이 지났지만 골조만 완성된 상태다. 공교롭게도 2020년 1월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번지면서 북한은 국경을 닫아 버렸고, 이 또한 ‘네 탓’의 소재가 됐다. 완수가 쉽지 않은 정책을 추진했지만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닥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 ‘네 탓’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공약한 군사 정찰 위성 발사는 한 달 늦어졌고, 게다가 이마저 실패했다. 중대 정책을 결정하는 노동당 전원회의(8기 8차)도 이달 상순 열겠다고 발표(지난달 29일)했지만, 하순의 첫날인 16일에야 시작했다. 기술적인 이유나 기상 상태로 위성 발사가 늦어질 수 있다. 회의 역시 ‘하루 정도쯤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자의 무오류성을 강조하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려는 북한 사회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뭔가 복잡한 북한 당국의 속내를 보여준다.

구관이 명관인가?

그래서일까. 북한 매체들은 사흘 동안 열린 이번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연설(보고 및 평가)했다는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상반기를 결산하는 회의에서 내세울 만한 게 없었던 건 아닐까. 전원회의 때 진행한 인사는 더욱 눈에 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수시로 고위 간부들의 인사를 했다. 아버지 시대의 사람을 물리고, 자기 사람을 임명하는 소위 세대교체였다. 북한의 핵심 엘리트 조직인 노동당 정치국원의 평균 나이는 김 위원장 집권 당시보다 10년가량 ‘젊어진’ 60대 후반이 됐다.

하지만 이번 전원회의에서 3명의 정치국원 간부사업(인사)은 세대교체 추세를 역행하는 결과였다. 정치국 후보위원이던 강순남 국방상을 위원으로 승진시킨 건 그렇다 치자. 지난해 물러났던 김영철과 오수용 등 ‘노병’의 컴백은 의외다. 지난해 말 물러난 뒤 후보위원으로 정치국에 복귀한 김영철은 정치국원 가운데 최고령인 77세다. 비서나 부장이 아닌 ‘고문’(통일전선부)자격이기도 하다. 30여 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고문 자격은 그가 유일하다.

경제통으로 꼽히는 오수용 역시 76세로 세대교체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6월 경제정책실장 출신의 전현철에게 자리를 내주고 은퇴의 길을 걸었으나 1년 만에 정치국 위원(경제담당 비서 겸 경제부장)으로 부활했다.

북한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건강을 고려해 잠시 휴식의 시간이었을 수는 있다. 믿을 수 있는 건 노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잦은 인사를 통해 기강을 잡고, 정책의 방향을 바꿔온 김 위원장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하면 대외,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 뭔가 변화를 모색할 필요성을 느낀 게 아닐까. 최근 3년 동안 노동당에서 가장 많은 교체가 이뤄진 자리가 경제부장(김두일→오수용→전현철→오수용)이라는 점도 자체적인 노력만으로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

셀프봉쇄 해제하나

때문에 북한이 2020년 1월부터 유지해온 셀프 봉쇄를 조만간 풀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북·중 국경 지역에선 이미 여러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화물 열차가 비정기 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지난 1월 두만강 하구의 원정리와 중국 훈춘 간 화물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 함북 무산과 중국 옌볜 인근의 난핑을 잇는 도로를 개통하고, 북한의 세관 직원들은 봉쇄의 상징이었던 방역복을 벗었다.

북한은 최근 중국과 국경 개방과 관련한 회의를 하며 얼굴을 붉히며 파행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북·중 교역이 수년 동안 끊기자 중국 당국이 단둥 지역의 대북 수출품 야적장을 처분했는데, 북한이 이에 대한 불만을 대거 쏟아 냈다는 내용이다.

인적 교류에 대비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200명 안팎의 선수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3일엔 평양에서 올림픽의 날을 기념하는 달리기 대회를 ‘느닷없이’ 열었다. 수십 명으로 추정되는 대회 참가자들은 가슴에 ‘OLYMPIC DAY’라고 영어로 새긴 흰색 티셔츠를 입고 달렸고, 북한은 이 사진을 관영 매체를 통해 외부에 타전했다. 최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제안을 무시하지 않고 외무성 부상이 나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조건이 맞으면 응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북한은 다음 달 27일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 중이다. 이 자리에 해외 인사를 초청하기 위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북한 입장에선 셀프 봉쇄를 거둬들이는 최고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에 직접 손을 내밀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북한과 관련해선 많은 변수가 있어 예단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외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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