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출신 아닙니다만…해설은 선수죠

박린, 김효경 2023. 6. 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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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치’에 성공한 조현일 농구 해설위원, 송재우 야구 해설위원,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왼쪽부터)이 27일 오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스포츠 해설위원 ‘3대장’이라 불리는 축구 한준희(53), 야구 송재우(57), 농구 조현일(43)이 2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 모였다. 조 위원이 “수협도 농협도 아니고 축협(축구협회)에 온 건 처음”이라며 입담을 뽐냈다. 한 위원은 “송재우라는 매우 성공적인 선례가 있었기에 타 종목에도 비선출(비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등단할 수 있었다”고 추켜 세웠다.

셋의 공통점은 프로스포츠 본고장 미국에서 미친 듯이 스포츠를 봤다는 거다. 그리고 자기가 열성적으로 파고든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성덕(성공한 오타쿠)’, ‘덕업일치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송 위원은 1998년 박찬호가 활약하던 LA 다저스 경기를 중계하며 인기를 얻었다. 송 위원은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메이저리그(MLB)를 접한 뒤 이태원 헌책방에서 미국 잡지를 구해 읽었다. 컴퓨터 정보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골든게이트대)에 건너갔을 때많은 경기를 봤다. 당시 일본 투수 노모 히데오 열풍이 불어 외고 부탁을 받았고, 보험회사(파머스)에서 일하면서 MLB 통신원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1998년 귀국했는데 경인방송에서 해설 제의가 왔다. 당시 방송국 관계자가 ‘해설위원’이라고 하기 애매했는지, ‘송재우 매니어라고 소개하는 게 어때’라고도 했다”고 떠올렸다.

한준희는 ‘철학 교수’를 꿈꾸다 ‘축구 박사’가 됐다. 서울대 해양학과 출신인 그는 철학에 심취해 200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앰허스트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한 위원은 “미국에 이민자가 많다. 덕분에 잉글랜드와 브라질 축구 중계를 해줬고, 중독 수준으로 봤다. 인터넷 커뮤니티(사커라인)에 글을 올려 이름이 알려졌고, 2003년 귀국해 박지성·이영표가 뛰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중계로 해설에 입문했다”고 했다. 조 위원은 “2005년 농구잡지(루키) 통신원으로 2년간 미국프로농구(NBA) 보스턴 셀틱스 출입기자를 한 뒤 마이크를 잡았다”고 했다.

'덕업일치'에 성공한 조현일 농구 해설위원,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 송재우 야구 해설위원(왼쪽부터). 장진영 기자

조 위원이 “송 위원님 해설을 벤치마킹했다. 실책을 하더라도 선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풀어 나간다. 한 위원님은 중계 카메라에 잡힌 요르단 국왕을 알아보고 설명한 적도 있더라”고 했다. 한 위원은 “당시 스페인 국왕을 만나러 왔다는 기사를 봤었다. 나도 어제 2시간 밖에 못 잤지만, 조 위원처럼 중계 도중 코피가 날 만큼 워커홀릭은 아니다”며 웃었다. 조 위원은 2018년 NBA 중계 도중 쌍코피를 쏟고도 방송을 이어간 적이 있다. 조 위원은 “지인이 ‘10억원짜리 방송사고였다’고 농담했다. 이후 유튜브 채널명을 ‘조코피 TV’로 개설해 구독자가 10만명이 됐다”고 했다.

중계 도중 황당했던 에피소드를 묻자 한 위원은 “아시안컵 경기장이 정전됐고, 유로대회 때 송신탑이 벼락을 맞아 중계가 끊겨 다른 얘기로 시간을 벌어야 했다”고 하자, 송 위원도 “중계차 문제로 박찬호 선수의 등만 보고 4회까지 중계한 적이 있다”고 했다.

'덕업일치'에 성공한 조현일 농구 해설위원, 송재우 야구 해설위원,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왼쪽부터). 장진영 기자

셋은 종목 별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로 베이브 루스(야구), 리오넬 메시(축구), 마이클 조던(농구)을 꼽았다.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을 묻자 송 위원은 “샌프란시스코에 살아 자이언츠 팬이다. 지역 라이벌 다저스와 맞붙으면 박찬호와 류현진이 잘 던지고, 샌프란시스코가 이기길 바랬다”고 고백했다. 한 위원은 “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팬인데, 토트넘 손흥민이 상대일 때 비슷한 감정”이라고 했다. 조 위원은 “해설을 시작한 뒤 두 형님처럼 객관적인 해설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비선출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송 위원은 “움직임 등 기술적인 부분은 건드리기는 어렵다. 대신 시시콜콜한 선수 개인사, 팀 역사 등 객관적인 설명한다”고 했다. 한 위원도 “해설은 선수 출신이 하는 게 맞다. 다만 지난 20년간 선출 해설위원들이 제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프란츠 베켄바워(독일)과 스벤 예란 에릭손(스웨덴)을 구분 못하는 분도 있었다. 비선출 해설위원이 도태되지 않았다는 건 끊임없이 공부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은 “해설위원은 꿈꾸는 분들에게 ‘공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4대 보험도 안된다. 방송사 중계권에 따라 밥벌이가 하루아침에 날아갈 수 있다’고 솔직히 말해준다”고 했다. 송 위원은 “기자, 기록원 등 스포츠 현장과 가까운 일을 하면 기회가 생길 확률이 높다. 영어는 최소한 현지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박린·김효경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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