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고민 ‘일 따로 신앙 따로’… 이젠 교회가 답해야 한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자동화 장비를 잘 설계해서 현장 직원을 최대한 많이 줄이는 것이 성과였어요. 열심히 일했지만 내 일이 누군가의 직업을 없애는 일이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때부터 내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잘한다는 것과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 사이의 고민이 시작됐죠.”
직장생활 27년차 허성호(서울평안교회) 집사가 선교단체 인터서브코리아(대표 조샘)가 주관하는 작은 소그룹 ‘일터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이유다.
인터서브는 ‘선교적 숲’이라는 별칭으로 선교, 일터신학, 섬김 등 여러 주제의 소그룹을 개설해 운영한다. 이 중에서도 일터 신학을 주제로 모인 소그룹에는 서울과 대구, 부산, 중국, 인도네시아 등 각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신청자들이 모여 직장에서의 신앙 고민을 나누며 방향을 찾았다. 모임에서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해소되지 않았던 묵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줌으로 진행된 5주간 소그룹 모임은 봄에 끝났지만, 해외 출장 등의 일정으로 지난 17일 두 달 만에 오프라인 쫑파티가 열리는 서울 구로구 소그룹 현장을 찾아 리더인 이철규 원장과 그룹원들을 만났다.
모임 인도자는 평소 치과의사로서 일터 현장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해 온 이철규이대경치과 이철규(신반포중앙교회 장로) 원장이다. 이 원장은 자신의 일터에서 신앙인으로 고군분투하는 삶의 이야기를 다룬 ‘오늘을 그날처럼’(새물결플러스)의 저자이기도 하다.
상업화돼 가는 의료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요한계시록을 주해한 논문으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신학석사 학위를 받는 데까지 이어졌다. 직업영역에서도 삶과 신앙의 일치를 이루고자 ‘좋은 치과 기도모임’을 8년 동안 이끌기도 했다. 이 원장은 “좋은 질문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며 “의료인인 저도 ‘신앙과 삶의 통합’이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 신학교 문을 두드렸고,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요한계시록으로 신학석사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낮에는 치과에서 원장으로 진료를 마치고 평일 저녁 8시에 줌을 개설해 낯선 직장인들과 모임을 진행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과 같은 질문을 하는 이들과의 만남에 있었다. 그는 “이런 모임에 대한 분명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며 “수요가 있다는 말은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다는 뜻인데, 질문이 있는 분들을 보면 무척 기쁘고 반갑다”고 했다.
모임은 ‘일터신앙’(이효재저, 토비아)이라는 책을 교재로 발제자가 책 내용을 요약해 발표하고 질문자는 질문 2~3개를 만들어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양한 직업 환경과 경력,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삶을 직업 현장에서 일치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나눔은 서로에게 힘과 격려가 됐다.
이날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프라인 모임을 찾은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도경오 교수(봉산성결교회 집사)는 “평소 직장에서 신우회 모임도 해 왔고, Business as Mission의 비전으로 스타트업 회사에서도 일하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일터에서의 신앙에 대해 배우거나 깊이 공부해보지 못했다”며 “이번 기회에 같이 책도 읽고 나누며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신앙과 일터의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했던 지난 삶에 대한 위로와 함께 미래에 대한 작은 동력을 얻은 것 같아 기뻤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모임을 위해 회사 회의실을 제공한 허성호 집사 역시 “줌을 통해 인도네시아, 중국, 부산, 대구 등 다양한 곳에서 일상 속에서 선교적 삶을 사는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과 특정 선교단체나 교회라는 공통점이 없이 이 주제에 대한 관심자라는 이유만으로 다양한 삶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유익했다”며 “일상에서 말씀을 살아낸다는 것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 것임을 다시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 혼자가 아니라 동지가 있고 먼저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선배가 있고, 또 후배가 있음에 격려가 됐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런 모임을 통해 직장에서도 신앙인들과 함께 진지하게 신앙을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공동체를 시도해 볼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고 이 원장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이철규 원장은 교회에서 ‘일터와 하나님 나라’라는 코스를 개설해 청년층과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2년째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원장은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와 이를 든든하게 받쳐 줄 교회 공동체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치과를 운영하는 원장들과 ‘좋은 치과 기도 모임’을 인도하면서 ‘좋은 치과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의미있는 성과를 냈지만, 결국 교회 안에서의 설교와 교육이 이어지지 않을 때 동력이 약해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신실한 집사거나 장로인데 일터현장에서는 임금을 체불하거나 하청 업체 대금을 미루는 등 신앙과 삶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일 등이 그렇다.
이 원장은 “흔히 교회와 관련된 일은 성스러운 일, 직장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으로 인해 삶과 신앙이 분리되는 현상을 많이 보게 된다”며 “삶과 신앙을 강조하면 윤리나 도덕으로 구원받으려 하느냐는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윤리나 도덕은 마치 판토마임처럼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기독교적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4월 ‘일터 신앙’의 저자인 이효재 목사, 장신대 한국일 교수와 뜻을 모아 6주 과정의 성경공부 교재 ‘일과 소명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성경공부’(예배와설교아카데미)를 출간했다. 그는 “일과 신앙과 관련된 좋은 책은 많았지만 성경공부 교재가 없어 아쉬웠다”면서도 “그러나 교재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말씀’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 그리고 ‘그런 삶을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소그룹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소그룹 모임이 교회와 직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많이 활성화되기를 소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부산=이동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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