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정책 파행, 보수정권과 진보정권 합작품이다 [넥스트브릿지]
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이주원 기자]
▲ 한국은행의 통화 긴축 기조에도 가계대출이 계속해 증가하는 가운데 25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가계 대출 상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78조 2162억 원으로 5월 말(677조 6122억 원)보다 640억 원 불어난 상태다. 세부적으로는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잔액 510조 1596억 원)이 22일까지 4834억 원 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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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은 주택시장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아파트 가격의 하락 폭이 커졌고, 주택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역전세 및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이 일어났다. 사실 전세사기 문제는 '악한 일부 집주인'들이 만들어낸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주택시장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고, 그렇기에 더 나아가 주택정책의 책임이 일정부분 있는 문제다.
매물은 쌓여가는데 매수하려는 사람은 없다. 매도자 우위 시장에서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되었다. 금리인상으로 인해 영끌까지 해서 아파트를 장만한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커졌다. 주택가격이 오를 때야 이자가 오르더라도 버틸 수 있지만 주택가격 하락기에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버티기가 힘들다.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주택정책은 주택가격에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주택가격이 오르자 규제정책으로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공급대책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안정화'에 주력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과 박근혜 정부는 주택가격이 내리자 규제 완화 정책으로 투기수요까지 시장으로 불러들여 '시장을 살리려고' 했다.
주택가격 급등, 급락 시 정부가 썼던 정책이 다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여 주택시장 변동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문제는 주택시장 변동성(가격의 급등, 급락)에 따라 주택정책의 방향을 180도 바꾸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은 더 이상 정부 정책을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단기적인 정책 수단의 동원으로 인해 장기적인 도시계획 및 공급계획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국민적 불신은 진보와 보수정권이 합작해서 만든 결과이다.
'부담가능한 주택' 공급 늘리려는 노력 필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서구의 주요 국가들도 세계시장 환경의 영향으로 주택가격의 변동을 경험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주택가격의 급등과 주거비 부담의 심화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이에 새로운 정책 수단을 마련하는 것도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주택정책 접근 방식은 한국처럼 온탕과 냉탕으로 오가는 '갈 지자'(之) 행보가 아니었다.
한국이 가격 변동성에 따라 수립된 장기적 공급계획을 무력화하면서까지 공급대책을 마련한다면, 이들 국가는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을 기존의 계획에서 찾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먼저 한다. 한국은 중앙정부가 공급을 주도하는데, 이들 국가는 지방정부 주도의 주택공급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히 한국처럼 중앙정부가 개발부지(신도시 부지)에 대한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하향식 주택공급 정책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주목할만한 정책은 사회주택(Social housing) 등 부담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의 공급을 늘리려는 노력이다. 주거에 대한 수요를 추정하여 세부적인 주택공급 물량을 수립한다. 더구나 공급할 주택의 수량과 입지까지도 고려하면서 정책을 마련한다. 주택가격이 상승한다고 무작정 공급물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도시의 미래상과 주택공급계획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에 비해 한국, 특히 서울은 어떠한가? 도시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외면하고 공급만이 선인 양 도시재개발 지정을 남발한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이 공급하는 부담가능한 주택은 공급을 독려하기는커녕 적폐로 취급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기사가 그런 세태에 대한 예시다.
오세훈 "박원순표 사회주택은 세금낭비…SH에 법적 대응"(머니투데이/2021.8.27.)
주택시장의 변동성에 냉탕과 온탕으로 오가는 주택정책 말고 일관성 있는 주택정책이 필요하다. 이에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할 주택정책을 제안한다.
▲ 전문가들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초까지 역전세난이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는 가운데 12일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등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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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에게 "청년임대주택을 잘 지어줄 테니 너희들은 그곳에서 살라"고 하는 것은 반쪽짜리 주택공급정책이다. LTV 규제 완화로 청년들도 주택소유로 자산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은 물론 청년들이 주택조합을 꾸려 주택 구매 시 조합대출이 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4050 무주택가구를 위한 금융지원정책을 마련하자. 주거복지의 사각지대는 바로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4050 무주택자들이다. 최선의 복지는 자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둘, 자산기반형 주거복지만 하면 안 된다. 부담가능한 주택인 사회주택을 적극 공급하자. 사회주택은 '적정주거기준에 맞는 주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임대료가 부담가능하고 안정적 거주기간이 보장된 주택'이다.
사회주택은 공급과 관리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 '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입주자격 ▲ '주택'에 내는 임대료 기준 ▲ '주택'에 거주하는 임대기간 ▲ '주택'에 사는 임차인 권리에 따라 민간임대주택이냐 사회주택이냐를 구분한다. 이들 부담가능한 주택은 다양한 주택유형으로 공급할 수 있으므로 건강한 주택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셋, 부담가능한 주택의 추진을 위해서는 금융정책과 토지정책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는 공공이 적극 나서야 하는 지점이며, 토지은행 제도를 활용하고 금융상품을 만들어 제공해야 한다.
국민은 정부가 나서서 집값을 잡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바람일 뿐 실현되기 어렵다. 국민의 바람을 이루지 못하는 정부는 무능한 정부로 불신의 대상이 된다. 그런 이유로 국민에게 부동산정책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켰다고 인정받은 역대 정부는 드물다. 강력한 개입정책인 '토지공개념 3법'과 '200만 호 공급대책'을 쏟아낸 노태우 정부의 주택정책은 역대 정부 중 가장 잘했다고 인정받을만하다.
중장기적 정책 위한 토지비축 실행해야
부동산은 비탄력적인 재화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정책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래서 중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주택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오를 때 주택공급을 시작하면 늦다. 문재인 정부가 25차례의 대책 내놔도 시장에서 안 먹힌 이유도 정책과 타이밍의 불일치성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주택가격 폭등에서 교훈을 배워 토지비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만 토지비축 기능을 가지고 토지은행을 운용할 수 있는데, 지방정부 주도의 주택정책을 이뤄가려면 서울주택도시공사(SH)나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지방공기업에도 토지를 비축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주택공급용 토지를 미리 확보하고, 수요가 몰릴 때마다 꺼내서 택지로 쓸 수 있다면, 비탄력적 속성을 가진 주택시장의 변동성 문제에 대응하는데 효과를 볼 것이다.
필자소개 : 이주원은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학 박사과정 수료를 하고 도시와 주택문제를 화두로 살아온 도시재생과 주택정책 전문가입니다. 전 국토교통부 장관정책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 사)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과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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