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행사까지 열었지만... 한국은 '팩트체크' 위축 걱정

김시연 2023. 6. 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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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팩트체커 축제 '글로벌팩트10' 서울에서 개막... "윤 정부, 진실 판정의 사법화 경향"

[김시연 기자]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이 28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글로벌 팩트 10 행사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 IFCN 제공
 
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인 '글로벌 팩트 10(Global Fact 10)'이 28일 서울에서 개막했다. 이날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행사장은 전 세계 75개 나라에서 온 팩트체커와 언론인, 학자 등 550여 명으로 가득 찼고, 비대면으로도 774명이 참여했다. 10년 전 영국 런던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40여 명이 모였던 1회 행사의 10배가 넘는 대규모 행사였다.

75개 국 550여 명 모인 글로벌팩트,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와 함께 공동 주최한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글로벌 팩트의 서울 개최는 한국 언론 역사에도 중요한 기점이 되는 일이지만, 특별한 역사적 정치적 경험을 가진 아시아 각국의 팩트체커들에게 뜻깊은 일"이라면서,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은 식민 지배를 당했거나 독재자의 지배를 겪었다"면서 "미국의 언론인들이 객관주의 원칙으로 '오직 사실만'을 외칠 때 한국의 기자들은 식민 정부의 불의를 폭로하고 동포를 구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아야 했"고, "해방 이후 노골적인 검열과 언론 탄압이 존재하던 40년간의 독재 시절에도 권력에 길들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들은 해직당하고 때로 목숨까지 위협당해야 했다"고 한국 언론의 과거사를 소개했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신장됐지만, 언론의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이제는 시민들이 언론이 편향되었다며 불신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팩트체커들은 날로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상업적인 이익이 커지며, 정치적인 극단주의와 결합하는 허위정보에 맞서는 일을 해야 한다"고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사실에 기반한 이성적인 토론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리 사회의 허위정보에 대항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협력하자"고 당부했다.

2012년 오마이뉴스에서 32개 언론사로 늘어... 윤 정부 '진실 판정의 사법화' 우려
 
 2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팩트10' 첫날 한국 팩트체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세션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와 SNU팩트체크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75개 국에서 550여 명의 팩트체커와 언론인, 학자 등이 참여했다.
ⓒ IFCN 제공
 
첫날에는 한국 팩트체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오마이뉴스>에서 '오마이팩트' 코너를 만들어 대통령 후보 발언을 검증했고, 지난 2017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에서 SNU팩트체크센터를 만든 뒤 지금까지 32개 언론사로 늘어났다.

정은령 센터장은 "이전에도 오마이뉴스, JTBC 등이 팩트체크를 해왔지만,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여러 언론사들이 대선 후보에 대한 팩트체크를 시작함으로써 팩트체크의 대중화가 시작됐다"면서 "그간 해마다 팩트체크 검증 건수가 늘어나 4600건이 넘는 팩트체크 검증 결과가 쌓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는 허위정보 확산을 막으려고 시민 팩트체커를 교육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문해)' 프로그램인 '팩트체크넷' 활동 등을 지원했던 반면, 윤석열 정부에서는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사법적 대응'에 더 주력하고 있다.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오픈 네트워크(MILON) 최원석 대표는 이날 '한국 팩트체크 세션'에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정부가 사용하면,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되기 쉽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이라면서 "팩트체크 결과가 '가짜뉴스'로 불리는 사례를 우리는 미국 트럼프 정부 때 목격했다"고 꼬집었다.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도 "현재 한국 정부도 야당의 공세 중 일부를 가짜뉴스라 규정하고 소송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면서 "(진실의 판정 여부를 언론이 아닌 검찰과 법원 엘리트의 권위에 기대는) '진실 판정의 사법화' 현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도 지난 2017년 대선 직후 팩트체크 기관일 뿐인 SNU팩트체크를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각각 무혐의 처분과 원고 패소로 끝나기는 했지만, 재판이 끝나기까지 1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면서 "팩트체크를 하는 기관으로서는 이러한 소송들이 활동을 위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며 '진실판정의 사법화' 경향을 비판했다.

그는 이날 개회사에서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팩트체커를 환영하지 않는다"면서 "오직 증거가 이끄는대로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팩트체커들의 사명이지만, 막대한 사명감을 가진 우리도 지치고 때로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며 팩트체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렇듯 권위적인 정부나 극단적인 이해관계자가 팩트체커를 위협하는 현상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서울에 모인 전 세계 팩트체커들은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는 한편, 허위정보와 싸우는 데 효과적인 방법을 공유하고 학계와 플랫폼, 시민과 서로 협력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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