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독감 백신’ 독주 끝…mRNA로 ‘돌파구’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업체들 경쟁이 치열하다.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위해 독감 백신 생산을 멈췄던 SK바이오사이언스가 공공 조달 시장에 복귀하면서 이름값을 증명했다. 지난해 공공 조달 시장 입찰에서 탈락했던 일양약품도 최저 입찰 가격으로 1순위 자격을 확보했다.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코로나19 기간 독감 백신 시장을 지배했던 GC녹십자의 독주 구조는 막을 내렸다.
이 같은 모양새는 올해 초부터 예상됐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번 독감 백신 공공 조달 시장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GC녹십자의 ‘하락 정도’다. 독주 시대가 끝나더라도 공공 조달 시장에서 SK바사와 2강 구도를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GC녹십자는 공공 조달 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한 총 6개 백신 기업 중 4위에 머물렀다. GC녹십자는 민간 조달 시장에 집중해 공공 조달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다.
SK바사 복귀에 ‘저가 경쟁’까지 겹쳐
질병관리청이 ‘2023~2024절기 독감 국가예방접종 지원 사업’을 위해 계약한 백신은 총 1121만회분(도즈)이다. 1067만도즈였던 지난해보다 계약 물량을 늘렸다. 하지만 GC녹십자는 174만도즈 확보에 그쳤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400만도즈, 497만도즈를 공급 계약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비율로 따지면 전년 대비 64.9%, 2년 전과 비교하면 56.5% 감소했다.
예년 대비 올해 GC녹십자가 공공 조달 시장에서 부진했던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먼저 최대 경쟁사 SK바사의 복귀다. 2020년까지 독감 백신 시장은 SK바사와 GC녹십자 2강 구도였다. 하지만 2021년 SK바사가 코로나19 백신에 올인, 독감 백신(스카이셀플루) 생산을 중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GC녹십자의 ‘독주’ 체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엔데믹과 함께 SK바사의 전략도 수정됐다. 엔데믹과 함께 실적이 급감하자 신사업에서 기존 사업으로 중심추를 옮긴 것. SK바사는 올해 중 자사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2년 만에 독감 백신 시장으로 돌아온 SK바사의 이름값은 여전했다. 올해 SK바사는 공공 조달 시장 낙찰 기업 중 가장 많은 물량(242만도즈)을 담당하게 됐다. 총 조달 물량 중 5분의 1이 넘는 수준이다.
경쟁사가 복귀했으니, 계약 물량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제약업계가 이번 공공 조달 시장 계약 결과를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다. GC녹십자 하락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 당초 제약업계는 독감 백신 시장이 과거처럼 SK바사-GC녹십자 2강 구도로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독감 백신 시장 1라운드로 불리는 공공 조달 시장에서 SK바사는 가장 많은 물량을 따냈고, GC녹십자는 낙찰 기업 6곳 중 4위(계약 물량 기준)에 머물렀다.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GC녹십자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GC녹십자는 투찰 금액(입찰 단가)으로 1만700원을 제시했다. 조달청이 공고한 기초 금액과 동일한 액수다. 문제는 나머지 5개 업체들이 ‘저가 경쟁’을 펼쳤다는 것. 사노피파스퇴르, 보령바이오파마, 한국백신은 기존 저가 정책을 유지했다. SK바사도 GC녹십자보다 저렴한 가격을 써냈다. 또 지난해 GC녹십자와 동일한 1만700원을 투찰 금액으로 내놓은 일양약품은 올해 1만100원을 제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뛰어들었다. 결과적으로 GC녹십자가 가장 고가를 써낸 셈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 필요한 독감 백신 물량을 최저 가격순으로 순차 배정했다. GC녹십자는 5개 업체들이 배정받은 뒤 남은 물량(174만도즈)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입찰 단계에서 GC녹십자가 설정한 공급 물량(430만도즈)의 40.4% 수준이다.
GC녹십자는 남은 물량을 민간 독감 백신 시장으로 돌려 부진을 만회한다는 입장이다. 독감 백신 시장은 공공 조달 시장과 민간 시장으로 구분된다. 백신 업체는 공공 조달 시장에서 배정받지 못한 물량만큼 민간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민간 시장은 통상 독감 백신 경쟁 2라운드로 불린다. 다만 민간 시장의 경우 제약사 영업력과 가격에 따라 실적이 결정된다. 실제 일양약품은 지난해 공공 조달 시장에서 유찰되면서 자사 독감 백신 ‘테라렉트’ 매출이 전년 대비 32% 감소하기도 했다. 올해 민간 시장에 독감 백신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국내 제약사 6곳와 외국계 제약사 3곳 등 총 9개다. 7개 업체가 공급했던 지난해보다 소폭 늘어 경쟁이 더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감 백신 업체 관계자는 “공공 조달 시장은 쉽게 말해 계약을 따내면 영업적으로 시간을 들일 거리가 없다”면서 “반면 민간 시장은 병·의원과의 관계부터 영업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괜히 독감 백신 업체들이 공공 조달 시장에 총력을 쏟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QIVe’ 유정란 방식 한계…mRNA 개발 속도
상황이 이렇자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GC녹십자의 ‘독감 백신 명가’ 타이틀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면서 명가 타이틀 유지를 위해서는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독감 백신 개발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상용화된 백신은 유정란 방식과 세포 배양 방식 두 가지다. 국내에서는 SK바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유정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GC녹십자도 대표적인 유정란 방식의 독감 백신 개발 기업이다.
유정란 방식은 계란에 바이러스를 넣어 균주를 키운 뒤 단백질을 뽑아내는 형태로 독감 백신을 개발한다. 신선한 계란을 확보하고 균주를 키우는 데 시간이 소요돼 상대적으로 생산 기간이 길다. 또 계란 공급 불안정성도 약점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 등 유정란 공급 불안정을 부추기는 이슈가 매년 반복되는데, 이때마다 원료 수급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에도 유정란 방식 독감 백신은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강점으로 꼽히는 ‘신뢰도’도 흔들리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녹십자의 유정란 방식(QIVe)보다 세포 배양 방식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 영국의 백신 접종 및 면역 공동위원회(JCVI)는 ‘2023-2024절기 독감 백신 연령별 가이드’를 발표했는데, 접종 대상에게 CSL시퀴러스의 aQIV 방식과 4가 인플루엔자 세포 배양 백신 접종을 우선 권고한다고 밝혔다. 특히 65세 이상인 경우 QIVe 유정란 방식을 차순위(If the preferred vaccine is not available) 항목에서도 제외했다. 세포 배양 방식은 무균실에서 세포를 키워 균주를 삽입하는 형태다. 바이러스 변이를 피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또 알레르기로 인한 사용 제한이 없고 생산 기간이 짧다는 게 장점이다.
GC녹십자도 뒤늦게나마 분위기 변화를 감지한 모습이다. 최근 메신저리보핵산(mRNA) 독감 백신 개발에 착수한 배경이다. mRNA는 독감 백신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mRNA 기반의 백신은 항원 유전자를 리보핵산(RNA) 형태로 체내에 주입, 면역력을 유도한다. 기존 백신과 달리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GC녹십자의 1차 목표는 2024년 중 mRNA 기반 독감 백신 임상 1상 진입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5호 (2023.06.28~2023.07.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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