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이 대순가, ‘인디아나 존스’인데 [쿡리뷰]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1944년, 모험가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는 동료 고고학 교수 바질 쇼(토비 존스)와 함께 나치가 약탈한 보물을 찾아 나선다. 이들이 발견한 건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다이얼 ‘안티키테라’의 반쪽. 나치와 절체절명의 추격전을 벌이던 이들은 마침내 안티키테라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969년 뉴욕, 정년퇴임을 맞은 존스 앞에 바질 쇼의 딸이자 자신의 대녀 헬레나 쇼(피비 월러-브리지)와 의문의 세력이 찾아와 안티키테라를 앗아간다. 평범한 교수의 삶을 살던 존스는 다시 탐험가 모자를 쓰고 떠밀리듯 모험의 세계로 향한다.
28일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감독 제임스 맨골드)은 존스가 보낸 영광의 시대와 오늘날을 아우른다. 15년 만에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도입부터 관객과 간극을 좁힌다. 20분가량 이어지는 초반부 2차 대전 시퀀스는 관객이 그동안 봐온 존스의 젊은 날을 비춘다. 뛰어난 판단력과 임기응변 능력, 호전적인 모습은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트레이드마크인 채찍을 들고 적과 맞서는 장면에서 메인 테마곡이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울려 퍼질 때면 진한 향수가 가득 느껴진다.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존스의 전성기로 시작해 현재로 시선을 돌린다. 뉴욕에 거주하는 고고학 교수 존스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찬란한 젊은 날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웃집 청년에게 존스는 그저 소음에 예민한 옆집 노인이다. 존스는 일상을 따분하게 살아간다. 아들 사망 후 아내 매리언(캐런 앨런)과는 협의 별거 중이고, 인간이 달로 향하는 시대에 고고학은 학생들에게 따분한 고전 학문일 뿐이다.
무뚝뚝하고 괴팍한 노인 존스에게 생기가 도는 건 안티키테라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영화 역시 이 대목부터 활력이 돋아난다. 말로는 “좋았던 시절은 끝났다”면서도 과거 탐험가 시절 복장을 갖춘 그에게서 반짝임이 느껴진다. 현대 문명 속 고전적인 존스는 다분히 이질적으로 비쳐진다. 오토바이를 따돌리기 위해 말을 타고, 총을 가진 상대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에서부터 샘솟는 반가움을 마주할 땐 이미 영화 속 세계에 푹 빠진 후다.
존스의 관록은 젊은 혈기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 모험을 이어갈수록 경험치는 빛을 발한다. 곳곳에서 위험이 도사려도 번뜩이는 기지로 모든 걸 헤쳐간다. “어깨는 쑤시고 허리는 삐걱댄다”고 투덜대면서도 “흑마술 고문도 당해보고 총을 9번이나 맞아봐서 이 정도는 끄떡없다”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그는 삼륜차로 모로코를 질주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해저와 동굴 등을 탐험한다. 상영시간이 장장 3시간에 달하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볼거리가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민다.
영화는 나이 든 존스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올해로 81세인 배우 해리슨 포드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포드는 앞서 한국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나이 드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서 “나이를 회피하지 않고 수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다. 스크린에 가득 담기는 그의 주름은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게 한다. 영원한 젊음을 거부한 존스는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영화 캐릭터로 머무르지 않고 우리네 삶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든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함께 세월을 보낸 관객에게, 모험가로 돌아간 백발 존스의 활약은 묘한 위로로 다가온다. 나이가 들어도 인디아나 존스로서 날고 구르는 해리슨 포드에게서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 이 지점에서 시리즈 완결 편이 남긴 여운은 더욱 짙어진다. 백발 노인이 대수겠는가. 해리슨 포드는 여전히 모두의 인디아나 존스이며, 인디아나 존스는 영원한 우리의 모험가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에게 보내는 가장 완벽한 작별인사이자, 존스와 격변의 시대를 함께 지나온 모두에게 보내는 헌사다. 쿠키영상은 없다. 상영시간 154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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