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라면값 내린다더니…인기제품 '불닭볶음면' 쏙 뺐다
“라면이 왜 이리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면은 소비자물가지수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요.”
28일 농심·삼양식품·오뚜기·롯데웰푸드·SPC 등이 다음 달부터 일부 라면·과자·빵 값을 4.5~5.1% 내리기로 하는 등 업계 전반에 가격 인하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라면 가중치가 1000분의 2.7에 불과해서다. 정부는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458개 대표 품목 가격 변동을 바탕으로 소비자물가지수 통계를 내는데, 전세(54)와 월세(44.3), 휘발유(20.8), 전기요금(15.5) 비중이 비교적 높다. 라면은 식료품 중에서도 돼지고기(10.6), 국산 쇠고기(8.8), 치킨(7.0), 쌀(5.5)보다 비중이 작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과자와 빵의 가중치는 각각 1000분의 3.5, 6.5에 불과하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밀 가격이 그때에 비해 50% 정도 내렸다”며 “기업들이 적정하게 내리든지 대응해 줬으면 한다”고 라면을 콕 찍어 거론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21일 “원료(가격)는 많이 내렸는데 제품값이 높은 것에 대해선 경쟁을 촉진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유통 구조도 살펴야 한다”며 추 부총리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그러자 식품 업계가 열흘도 안 돼 ‘백기’를 드는 모양새다. 익명을 원한 라면 업계 관계자는 “라면이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라 가격 인하 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여지가 커서일 것”이라며 “특히 공정위 조사 거론은 압박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털어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라면은 특히 국민이 가격을 체감하는 대표 품목인 건 맞다”면서도 “정부는 공정 경쟁에 문제가 있을 때 규제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부와 업계가 서로 성과를 챙기려고 시늉만 낸다는 지적도 있다. 가격 인하 대상에서 주요 인기 제품이 빠진 것이 대표적이다. 농심은 대표 품목 2종만 가격을 인하했다. 삼양식품은 해외 매출이 높다는 이유로 불닭볶음면을, 오뚜기는 다른 제품 대비 가격이 낮다는 이유로 진라면을 각각 가격 인하 대상에서 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이날 “라면값 인하율과 제품 종류 측면에서 생색내기”라는 논평을 냈다.
13년 전과 판박이…결국 1년 만에 도루묵
업계에선 13년 전인 2010년 초 이명박 정부 시절 식품 업계가 가격 인하에 들어갔던 경험도 거론한다. 당시 한나라당이 공정위에 식품 업체들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를 요구한 이후 SPC가 먼저 “밀가루값 인하와 원화가치 상승에 따라 일부 빵값을 인하한다”고 밝혔다. 삼양식품·농심·오리온·크라운해태제과 등도 곧이어 가격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주요 제과 업체는 2011년 5월에, 일부 라면 업체는 2011년 11월에 가격을 인상했다. 원료 가격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대면서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역할은 가격 담합 등 감시 기능에 그쳐야지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정부 주도의 가격 담합”이라며 “사기업에 대한 자율성 훼손이자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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