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가 소리내다] 조민 의사면허 반납? 취소가 맞다

이형기 2023. 6.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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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의사면허 취소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조 전 장관의 북콘서트에 참석한 조씨. 그래픽=김주원 기자

2019년 초에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하고 광범위한 대학 입시비리 스캔들이 터졌다. 50여 명에 이르는 사회 명사가 연루됐는데 그중 압권은 로리 라플린과 마시모 지아눌리 부부였다. 라플린은 드라마 ‘한지붕세가족’의 미국판이라 할 만한 TV 시트콤 ‘풀하우스’에서 신중하고 사려깊은 베키 숙모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녀의 남편 지아눌리는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다. 남 부러울 것 없던 이 부부는 스포츠 경력이 전무한 두 딸을 조정 선수로 위장해 체육특기생으로 남가주대학(USC)에 입학시켰다. 그뿐만 아니다. 기부금을 가장해 6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입시 브로커에게 건넸다.

스캔들이 터지자 라플린과 지아눌리 부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발뺌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유죄를 인정했고 실형을 살았다. 벌금도 냈고 사회 봉사도 해야 했다.

사건을 담당한 고튼 판사는 선고에 앞서 라플린과 지아눌리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가족을 먹이려고 빵을 훔친 게 아니에요.” 추위에 떠는 누이와 어린 조카 일곱 명에게 줄 빵을 훔쳤던 장발장과는 달리, 이미 부자에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부정한 방식으로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던 부부의 탐욕을 지적한 셈이다. 고튼 판사의 훈계는 계속됐다. “존경받는 전문 배우로 동화 같은 삶을 살던 당신은… 더 많이 움켜쥐려고 말도 안 되는 욕심 때문에 중죄인이 됐군요.”


유죄 판결에도 사과 없어


정경심-조국 부부는 여러 면에서 라플린-지아눌리 부부의 한국판이라 부를 만하다. 두 사람은 장삼이사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부부 교수였다. 남편인 조국은 법무부 장관이라는 높은 지위에도 올랐다. 하지만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표창장과 인턴증명서를 위조한 게 발각돼 정경심은 실형을 사는 중이다. 조국도 올해 2월에 열린 1심 재판에서 자녀 입시비리 관련 혐의 7개 중 6개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조국은 기소와 함께 서울대에서 직위해제됐는데 이번에 교원징계위원회가 파면을 의결했다.

정경심-조국 부부와 라플린-지아눌리 부부 사이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들이 부, 명예, 권력을 동원해 위조와 부정한 방식으로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도록 주도했고 탐욕이라는 공통분모가 그 과정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쌍의 부부 사이에 발견되는 유사성은 딱 여기까지다. 실형이 선고되자 라플린-지아눌리 부부는 “진심으로 깊이 사죄한다, 모든 처벌을 받아들인다”며 사과했다. 이와는 달리, 유죄를 선고받은 정경심-조국 부부는 아직까지도 진심은 고사하고 사과의 변조차 내놓지 않았다.

되려 조국은 교수직 파면이 의결되자 “성급한 결정에 유감, 즉각 불복하겠다”며 반발했다. 이 정도면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결여된 정도가 아니라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불러야 옳다. 그뿐만 아니라 조국은 1심 재판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유죄 선고를 받은 이후에도 뜬금없이 “사모펀드 혐의는 무죄를 인정받았다”며 득의양양했다. 그러나 일부 혐의가 벗겨졌다고 유죄가 무죄가 되는 게 아니다. 실로 대단한 정신승리가 아닐 수 없다.

큰 차이가 또 있다. 라플린-지아눌리 부부의 두 딸 중 둘째인 올리비아는 유명한 뷰티와 패션 인플루언서였다. 부정입학 스캔들이 터지자 올리비아는 공식 활동을 중단했고 광고 계약도 강제로 종료됐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에 올리비아는 대중에게 “죄송하다, 잘못에 책임을 진다”고 사과했다. 자퇴인지 퇴학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다니던 대학도 그만뒀다.


“떳떳…의사자질 충분” 주장


하지만 정경심-조국의 딸 조민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부모가 주도한 입시비리에 조민이 어느 정도로 관여했는지는 곧 법이 밝혀 주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결백한 방관자(innocent bystander)’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조민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게) 떳떳하다, 의사 자질이 충분하다”며 보통 사람은 도저히 부끄러워서라도 하지 않을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급기야 입시비리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조민이 “의사면허를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잠깐만, 반납이라고? 반납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그 전에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면허를 획득했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언제 조민이 의사면허를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땄는가. 엄밀히 말해 다른 의사에게 돌아가야 할 면허를 부정한 방식으로 뺏어 놓고 이제 와서 자기 것도 아닌 면허를 선심 쓰듯 반납한다니 도무지 앞뒤가 안 맞다.
지난해 부산대 국정감사에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조민씨가 부산대에 제출한 서류 목록을 보이고 있다. 사진 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캡처


국가면허제 심각하게 유린


원인 행위가 무효이기 때문에 반납이 아니라 ‘취소’다. 그리고 취소는 조민이 아니고 정부가 한다. 이 시점에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검찰에 자진 출두해 떼를 쓰던 어떤 정치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오버랩된다. 둘 다 역할 인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얼마나 상황이 기괴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준다. 그래도 사람들의 감성과 누액을 자극하는 효과는 있나 보다. 조민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20만 명을 넘어 섰단다.

공정이 생명인 대학입시와 엄정해야 할 국가면허제를 한 집안에서 이렇게 심각하게 유린한 전례는 없다. 만일 정경심-조국-조민의 범법 행위를 제대로 징치하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조민의 의사면허는 반납이 아니라 취소돼야 한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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