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기·가스 ‘펑펑’ 써놓고…주한미군, 요금개정 거부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전기요금이 국민이 내는 일반용 요금에 비해 ㎾h(킬로와트시)당 50% 가까이 싼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주한미군 1명이 쓴 도시가스 양은 국군보다 10배가량 많았다. 올해 두 차례 에너지 요금 인상으로 서민 경제가 시름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과도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주한미군의 전기요금 구매단가는 ㎾h당 103.6원이었다. 반면 국군용 요금은 147.64원, 일반용은 152.3원이었다. 지난 2월에는 일반용(168.61원) 요금이 미군용(108.74원)에 비해 60원가량 높아 최근 1년(지난해 5월~지난 4월)간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정부는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일반용보다 낮게 책정한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주한미군이 낸 전기료는 산업용과 비교해도 ㎾h당 최대 50원 저렴했다.
주한미군이 이처럼 값싼 전기를 쓸 수 있는 것은 1962년 주한미군과 한전 간 체결된 ‘전력공급 계약’ 때문이다.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이 계약서에는 ‘주한미군과 공급조건이 유사한 다른 수용가에 적용되는 최저 요율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용도별로 가장 저렴한 전기요금에 준해 돈을 내겠다는 뜻이다. 이에 주한미군은 당초 가장 저렴한 산업용 전력요금을 적용받았다. 2003년 국회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지자, 정부는 그해 12월 주한미군 전기요금을 ‘전년도 고객 평균 판매 단가’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현재 주한미군 전기요금 결정 체계는 이렇다. 우선 한전이 전년도 전체 전기 사용고객의 평균 판매단가를 산정한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공공용역분과위원회, 기획재정부와 SOFA 합동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그러나 최근 전기요금이 자주 인상되면서 전년도를 기준으로 내는 주한미군 전기요금과 다른 요금의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한전은 2014년부터 6차례 주한미군 측에 전기요금 요율 조정을 요청했다. 저렴한 농업용이나 심야전력을 제외한 일반용 전기로 한정해 평균 단가를 계산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이 부담하는 전기료가 소폭 상승하게 된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SOFA 제 6조 2항에 규정된 ‘공익사업과 용역의 이용은 어느 다른 이용자에게 부여된 것보다 불리하면 안 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전기요금 연체료도 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은 2016년 당시 7개월에 걸쳐 전기료를 미납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연체료 5500만원을 내야 했지만 유아무야됐다. 현재 주한미군의 경우 요금 고지부터 납부까지 평균 40일이 걸리는데, 이는 일반 국민(20일)보다 배 가량 지연된 것이다.
도시가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한미군의 도시가스 사용량은 총 25만2410GJ(기가줄)이었다. 같은 달 국군은 55만5844GJ의 가스를 썼다. 총량 기준으로는 국군이 배 가량 가스를 더 이용했지만, 1인당 사용량으로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주한미군은 3만명이지만 국군은 63만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한미군 1명(8.41GJ)이 국군 1명(0.88GJ)에 비해 10배 가량 가스를 더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한미군은 2013년 한 해 동안 40만GJ의 가스를 썼는데, 지난해에는 127만GJ로 사용량이 3배나 늘었다.
한전은 가스공사와 달리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주한미군의 전력 사용량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2015년 공개 자료에 따르면 1년간 주한미군 1명당 전기사용량은 2만3953㎾h로, 국군 1명당 사용량(2534㎾h)의 10배에 달했다. 현재도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한미군의 에너지 사용은 한국 정부의 에너지 다이어트 기조와는 대비된다. 정부는 전 국민을 상대로 에너지 다이어트 캠페인을 전개하고, 이른바 ‘개문냉방’ 업소까지 적발하고 있다.
현재 한전 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 규모는 각각 45조원과 12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 경영 정상화를 근거로 올해 두 차례 공공요금을 올렸다. 지난 5월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1년 전보다 23.2% 상승했다. 서민 체감 물가도 덩달아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에너지 업계와 정치권 일각에선 주한미군의 전기요금 특혜를 없애면 한전 적자 수조원을 해소하고, 국민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 의원은 “형편이 어려운 우리 국민과 달리 주한미군은 수십년째 국군보다도 낮은 전기요금을 적용받고 있다”며 “밀린 전기·가스요금에 대한 연체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점 역시 엄청난 특혜”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을 국민에게 직접 전가하기 전에 국민 부담을 줄일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며 “주한미군의 에너지 낭비를 경감하고 전기 등 공공요금 현실화를 위해 주한미군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 적자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한·미 관계 등 여러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며 “단순한 에너지 현안을 뛰어넘은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한미군이 보유한 첨단 무기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전기·가스요금 특혜는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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