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반란 지켜본 김정은 충격과 공포…"핵 방아쇠 단속 나설 것"

정영교 2023. 6. 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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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 광장에서 바그너그룹 용병대의 무장 반란 진압에 기여한 약 2500명의 군인들에게 "사실상 내전을 막았다"며 치하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군사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건은 3대 세습으로 독재 체제를 이어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충격과 불안을 안겼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발하며 '공산당 퇴진'이란 구호까지 등장했던 중국의 '백지 시위'에 이어 현대판 '짜르'로 불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군사적 도전까지 목도하면서다.

북한은 이번 사태 직후 "러시아 지도부가 내리는 임의의 선택과 결정도 강력히 지지할 것"이라며 즉각 '푸틴 지지' 선언을 했다. 핵·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국제적 고립 속에서 발생한 중·러 정상에 대한 정치적 위기 상황을 극히 민감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바그너 사태' 반면교사 삼을 것


특히 하루 만에 용병으로 구성된 반란군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의 코앞까지 진격했다는 사실은 김정은에게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일 수 있다.

김정은 유일 지도체계를 철저히 갖춘 북한에서 러시아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아사(餓死)가 발생할 정도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푸틴마저 도전 받았다"는 사실은 북한에서도 유사한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전례이자 근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딸 주애와 함께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는 모습. 영상에는 검은 가방(붉은 원)을 든 경호원들이 김 위원장을 경호하는 모습이 담겼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특히 최고 권력이나 군사적인 문제와 연관된 사안의 경우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권력 유지를 위한 근본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은 사회 전반의 엘리트 층을 대상으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부대의 무단 이동이나 무장 반란과 관련한 모든 변수를 차단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김정은 안위와 관련한 북한 정권의 대응은 극도로 예민하다. 북한은 지난 4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 대한 폭발물 투척 사건이 발생하자 '방탄 가방'으로 추정되는 검은 가방을 든 경호원을 김정은 주위에 집중 배치하기도 했다.


"北, 중국 쪽으로 칩 옮길 것"


북한은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러시아와 '반미(反美) 연대'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 그룹에 무기 등을 공급하며 푸틴의 환심을 사려했다. 그런데 북한 파트너였던 프리고진이 '총구'를 모스크바로 돌리면서 북한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주변이나 측근이 아닌 푸틴 대통령을 의식적으로 직접 지지하는 모습을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한다. 안병민 북한경제포럼 회장은 "고립된 북한 입장에서 러시아가 흔들리면 외교·경제·군사기술 등의 모든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푸틴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푸틴 리더십에 상처가 난 상황에 대비해 '무게추'를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지금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러 양쪽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베팅을 해왔다"며 "그러나 향후 푸틴의 리더십이 더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할 경우 중국 쪽으로 칩을 급격히 옮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핵 방아쇠' 통제 강화할 듯


'바그너 반란'은 미수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김정은에겐 스스로 '보검'이라고 믿고 있는 핵무기의 관리·운영 체계에 대한 과제가 생겼다는 의견도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만약 바그너 그룹이 러시아의 핵무기를 확보했다면 이번 무장반란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지 았았을 거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병철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정은은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핵무기 통제의 권한을 현장 지휘관에게 부여해선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특히 사실상 마지막 리더십의 보루인 핵에 대해선 김정은의 통제력을 보다 강화할 장치들이 신속히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매체는 지난 3월 핵반격 훈련 보도에서 김정은 곁에서 미사일 발사를 지켜보는 장성급 군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채 등장시켰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핵 방아쇠의 명령 체계를 수행하는 역할 때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은 이미 김정은 결심에 따라 즉각 핵 공격이 가능한 지휘·통제 체계를 마련했다고 공언한 상태다.

북한은 지난 3월 '핵 방아쇠'라고 명명한 '국가 핵무기 종합관리체계'를 소개하며 "다각적 작전 공간에서 각이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통합 운용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정은 집무실에 설치된 '핵버튼'과 각지에 배치된 전술핵운용부대, 핵무기연구소, 미사일총국 등을 연결하는 핵무기 종합관리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오경섭 연구위원은 "김정은 리더십의 중요한 핵심축인 핵과 관련해선 김정은의 통제력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내부 통제 위한 대외 강경노선


이러한 북한의 내부 단속은 외부의 충격파 차단과 내부결속을 위한 대외 강경 노선을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은 현재의 국제정세를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로 규정하면서 외교적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중·러가 자신들의 '뒷배'임을 강조해왔다. 믿었던 뒷배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 상황의 불확실성 확대를 의미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이날 김정은은 남측 지도에서 수도권 지역을 가리키며 “전쟁억제력을 공세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러시아라는 뒷배가 급격히 무너질 경우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 지금보다 더 경도될 가능성이 큰데 이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시그널은 아닐 것"이라며 "한국의 입장에선 든든한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전제로 향후 보다 고립될 북한의 상황까지 감안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한 리스크 관리에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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