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 손 놓고 있는 사이... '없는 존재' 된 아이들

이영일 2023. 6. 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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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출생 미신고 아동의 사망·유기사건...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도입 등 적극 논의해야

[이영일 기자]

출생 미신고 아동의 사망과 유기 사건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 미신고 아동은 2236명으로 확인된다.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 정기감사를 진행하던 중,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 허점을 발견하면서 이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감사원이 출생 미신고 아동의 1%(23명)를 표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해당 자치단체에 아동의 무사 여부 확인에 나섰는데, 대부분 아동이 필수 예방 접종과 보육 지원 등 복지에서 소외되거나 범죄 등 위기상황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2일 기준 23명 중 3명이 살해 또는 사망하고, 1명이 유기된 것으로 확인된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복지부가 질병청, 경찰, 지자체와 출생 미신고 아동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먼저 해당 아동의 안전상태를 확인, 아동 안전이 확인되지 않으면 경찰청 등 관련 기관 조치를 취하게 된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비극 막기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하라"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의 출생신고 홍보 캠페인
ⓒ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2015년부터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 캠페인, 입법활동 등을 진행해 오고 있는 시민사회 컨소시움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더 이상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국회 회기 내에 출생통보제 도입을 비롯해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하고 기한 내 출생신고가 되지 않을 경우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 출생 사실을 기록하는 제도다. 28일 오후 출생통보제는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상황이다. 현재 법 제정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아동의 출생 사실과 출생 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출생이 신고되지 않은 아동을 지자체 등이 직권으로 기록하는 출생통보제가 진작에 마련돼 있었다면 5년 전 발생한 아동 살해 사건이 이제서야 밝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출생 미등록 아동학대는 2018년 95건, 2019년 89건, 2020년 74건, 2021년 74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이 점이 충격적인 일이라고 강조한다. 학대 피해를 당한 이후에 세상에 그 존재가 드러나는 아동이 지금도 2000여 명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원 사건처럼 아이가 출생해도 신고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기는 현실을 막기 위해 보편적 출생 등록이 필요하다"며 "누구나 한국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주민등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이를 주장해 오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에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미 갖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지켜낼 수 있는 아동을 수년간 놓쳤다"라고 말했다.

"출생통보제, 임산부 사지 내몰아"... 보호(익명)출산제 도입 주장도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보호출산법시민연대 회원들이 27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했다.
ⓒ 이영일
 
반면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보호출산제는 엄마가 아이를 낳아도 엄마의 이름이나 어떠한 인적 정보를 작성하지 않고 아이만 등록을 하는 것을 말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지난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처리가 불발됐다. 또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이 보호출산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출산제 도입을 주장하는 90개 단체들은 보호출산법시민연대를 결성한 상태다. 이들은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비없이 작은 출구조차 허락되지 않은 강제 출생신고제가 산모를 위험한 선택지로 내몰고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2월에 보호출산법을 대표 발의한 김미애 의원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2020년 12월 이후 2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 문턱을 못 넘기고 있다. 2022년 1월에는 출생통보제를 신속히 발의해 달라고 요청했고 2021년 3월에 법무부에서 출생통보제를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러는 사이 대한민국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래서 불안한 상태에 있는, 임신 갈등을 겪는 위기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신원도 보호하기 위해 보호출산제를 발의했다"면서 이 법안이 임산부와 아기의 기본권을 조화롭게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입양가족연대 오창화 대표도 이 자리에서 "출생 신고되지 못한 아이들에겐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강간에 의한 출산, 10대 미혼모의 출산, 외도 출산, 이혼 후 300일 이전 출산, 근신 출산 등이다"라며 "이들은 출산 사실을 숨기거나 아이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원룸이나 화장실에서 몰래 아이를 낳는다. 출생신고가 아예 불가능한 불법 체류자 등의 사례까지 포함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가 출생 신고를 피하려고 죽거나 감춰줘야 했는지 추산조차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오 대표는 "입양을 위해 출생신고를 강제한 그 법이 임산부를 사지로 내몰고 죄없는 아이들의 목숨까지 죽이고 있다. 서둘러야 한다"면서 "지금도 어딘지 모르는 원룸이나 화장실에서, 모텔에서, 고시원에서 위태로운 목숨이 태어나고 있다"고 보호출산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무엇을 했나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지난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설치한 베이비박스.
ⓒ 주사랑공동체교회
 
대체적으로 출생통보제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는 반면, 보호출산제는 '신생아 유기와 양육 포기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측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여러 환경과 조건 때문에 내가 임신한 사실을 숨겨야 하는 미혼모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어쨌거나 아이를 낳은 거다. 이를 비밀로 하고 쉬쉬하자고 하는 것이 보호출산제"라고 봤다. 그는 "내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고 해서 보호출산제를 통해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서 엄마와 아이가 같이 잘 살게끔 도와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부모의 '병원 밖 출산'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 운영자인 이종락 목사는 27일 국회 기자회견 현장에서 "미국과 독일, 프랑스는 베이비박스를 100개 이상 설치해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비밀출산법, 익명출산법을 도입해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조차 외면했던 베이비박스가 8년간 출생미등록 아동 2000여 명 중 1000여 명의 생명을 살렸다"고 주장했다.

이 목사는 "김미애 의원이 발의한 보호출산제 안에는 아기가 성인이 되면 알권리를 찾을 수 있는 통로가 있다. 단언컨대 유기를 위해 출산하는 엄마는 없다. 지금도 위태롭게 아기를 끌어안고 울고 있을 미혼모와 여성을 국가가 지켜달라"면서 "태아의 생명과 태어난 생명, 미혼모가 안전하게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보호출산제를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그동안 정부와 국회는 무슨 이유로 지난 5년여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급한 건 정부가 2000여 명의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아동의 삶'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수수방관해 왔던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야 할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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