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갯벌을 본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승렬 기자]
아름다움이 소거된 세계에서 사는 것, 그것은 세계 밖의 공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의 생존을 의미할 뿐이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푸른 행성 지구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탄성을 질렀던 아폴로 11호 암스트롱의 위치는 검은 침묵이 지배하는 우주였다.
정해진 시간 안에 지구별로 귀환하지 않으면 무한대의 우주 공간 속으로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우주인의 처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우주인의 눈에 비친 지구별은 무한히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 별이었다. 시간이 다 되도록 우주에 머문다면, 눈물겹게 아름다운 지구별은 저기 저 너머에 그대로 존재하겠지만 우주인들에게 남은 것은 소멸뿐이다.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과 기억의 전승
다큐 <수라>의 황윤 감독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새만금 간척 사업보다는 갯벌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새만금 지역 해수유통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 영화 <수라>의 한 장면. 갯벌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
세계 속 아름다움은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다큐 <수라>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전승'이다. 이 보석같이 아름다운 영화가 가능했던 것은 이십년 간 수라 갯벌의 생명들을 기록해 온 민초들의 모임인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은 황윤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갯벌 기록물을 전달했다.
이제 관객 차례다. 다큐 <수라>가 다 끝나고 암전된 스크린을 바라보며 여운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관객 하나하나가 수라 갯벌의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의 울타리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 실제 수라 갯벌은 하루에 두 차례씩 바닷물이 충분히 들락날락하며 갯벌의 생명체를 감싸 안아주는, 그런 보통의 갯벌이 아닌 육지화가 진행된 상태의 갯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라 갯벌에는 이미 해수유통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의 그레질하는 어민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입을 벌린 채 갈증과 배고픔 속에 죽어간 조개들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의 아들 오승준씨(활동가)는 수라는 분명히 갯벌이라고 말한다. 그는 해수유통만 이뤄지면 언제든 갯벌의 부활은 가능하다고 믿는 청년이다. 아직 20대인 이 청년의 속깊은 신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지난 5월 20일 수라갯벌에 들다 행사에서 오동필 단장이 참가자들에게 수라갯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황윤 감독의 <수라> 제작기에는 그 전사(前史)가 있다. 2003년 새만금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첫삽을 뜰 즈음, 이른바 환경운동가들과 사상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지배하는 개발과 자본 축적의 탐욕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잘 몰랐다.
영화 속 오동필 단장의 회고에서도 나오듯, 당시 '삼보일배'라는 지극한 고통과 참회의 몸짓이라면 그것으로 새만금 개발을 막아설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에 머물고 있었던 시절이다. 여하튼,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황윤 감독은 물막이 공사가 끝나기 전 새만금 구역 내 갯벌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촬영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6년 어민 류기화씨의 갑작스러운 비극적 죽음과 새만금 간척사업의 정당성을 옹호한 대법원 판결로 촬영은 멈췄다.
7년 전 군산으로 주거지를 옮긴 황 감독은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고,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어언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황 감독이 수라 갯벌에서 확인한 것은 생명의 약동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 검은머리갈매기의 아름다운 비행 |
ⓒ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
저어새의 부리가 여전히 갯벌 바닥을 휘저으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으며, 검은머리갈매기의 우아한 날갯짓은 감독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흰목물떼새의 날랜 달음박질은 갯벌의 역동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쇠제비갈매기는 알을 품고 야생의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본 죄
또한, 다큐 <수라>의 황 감독이 수라 갯벌을 찾으며 만나게 된 것은 아직 갯벌을 포기하지 않은 일군의 사람들이다. 바로 오동필 단장을 필두로 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다. 삼보일배로도 막지 못한 갯벌파괴사업 뒤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국가권력과 자본의 힘에 운동가들과 시민들이 현장을 떠날 때도 이들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결국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과 아직 펄펄 살아있는 갯벌 생명체들에 대한 기록의 힘이었으리라.
"우리의 싸움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게 한 힘은 아마 아름다움을 본 것의 '죄'일 것이다."
아마도 황윤 감독이 단절되었던 자신의 작업을 <수라> 제작을 통해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움'에 감염된 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가장 휴머니즘적 본능과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 재난 5월 20일 대구 수라갯벌 탐사대가 수라갯벌 현장을 찾았다. 염습지화 된 남수라 지역을 둘러보고 있다. 맨 앞에 선 이가 필자다. 아름다움의 죄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영화의 끝부분은 희망 그 자체이다. 오동필 단장의 기억 속 재현 장면으로만 등장하던 도요새의 군무가 황 감독과 관객 앞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2세대 생태조사 히어로 오승준씨가 황윤 감독과 함께 쇠검은머리쑥새의 지저귐을 찾아 나서는 영화의 첫 장면이 마침내 쇠검은머리쑥새의 지저귐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런 수미상관의 마무리는 전승이야말로 '세계 속 삶의 이어짐'의 조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큐 <수라>는 이 대목에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지극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갯벌 다큐 한 편을 즐기신 여러분들은 이제 '아름다운 죄인의 공동체'를 만드시라. 여러분 지역의 수라를 기록하고 기억하여 마침내 보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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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팔자는 현 영남대학교 영문과 교수이자, 대구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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